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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종합

백광홍(白光弘)선생 1522~1556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04.06.10 12:02 수정 2004.06.10 12:02




백광홍 선생은 문과에 급제한 고급관리이면서 문학에 조예가 높아 조선의 8대 문장가로 가사문학의 효시인 관서별곡을 남겨 가사문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중기(중종 17~명종 11년)의 문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대유(大裕) 호는 기봉(岐峯)이요. 아버지 세인(世仁)과 어머니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장남으로 장흥 기산리에서 태어났다.

아우 광안과 광훈 종제인 광성 등 한집안 4종항간이 모두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1549년(명종 4년) 28세로 생진(生進) 양시에 구중(俱中)하고 1552년(명종 8년)에는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처음은 홍문관 정차(正字)로 임명되고 1553년에는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후 1555년(명종 11년)에 평안도 평사(平事)가 되어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어 그곳의 생활상과 자연 풍물을 읊었다.

이듬해인 1556년에 병이 들어 관직을 그만 두고 귀향하던 도중 부안의 처가에서 작고하였으니 그의 나이 35세였다. 그는 낳을때부터 자질이 뛰어나고 뜻이 높아 효성과 우애가 남달랐고 행실이 올바른 성품이었다. 자라면서 이 항(李 恒)에게서 학업을 배우고 김인후, 이 이, 신 잠, 기대승, 임억령, 정 철 등과 같은 당대의 대문장가들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특히 관서별곡은 정 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關東別曲)보다 25년이나 앞서 지은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효시가 되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808년(순조 8년) 고향 마을의 기양사(岐陽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기봉집(岐峯集)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기봉 백광홍의 한시번역 및 관서별곡 주해 출판기념행사 및 6월 30일과 7월초에는 기념 심포지움을 개최할 계획이며, 6월 26~27일 기봉 백광홍 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관서별곡 문학현장, 장흥가단 작가와 작품현장으로 문학기행을, 10월중에는 기념 백일장 및 가사문학 작품 공모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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