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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영 / 작 가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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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농어촌 기본소득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조금 더 불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데 무슨 말일까? 송미령 농림축산부 장관과의 대화를 나는 귀 기울여 들었다.
나는 순창군 복흥면에 산다. 이번 농촌기본소득은 한 달에 15만 원 정도가 지급되는데, 일부는 주유소나 농협마트 같은 곳에서 사용할 수 있고, 상당 금액은 순창읍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복흥면을 비롯한 면 단위 지역 안에서만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전업작가다. 솔아북스출판사라는 독립출판사도 운영한다. 전국에서 한 달에 한 권 정도의 의뢰가 들어온다. 복흥면에 정착한 지 11년차가 되어가지만 글 쓰고 책을 내면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강의가 사라졌고 이후로 다시 복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군수가 바뀐 이후로 4년 동안 순창 내에서 강의가 한 건도 의뢰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순창 바깥으로 나가 일할 수밖에 없었다. 순창에 정착하기 위해 광주 아파트까지 처분해 복흥면 추령마을에 집을 사 시골로 오신 어머니는 다시 집을 내놓고 광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까지 하셨다. 먹고 살기 위해 이동해야 했던 나 때문에 어머니의 기본 소득은 3월이 넘어서야 지급되었다. 한 달 15만 원이라는 돈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5만 원은 농협마트와 주유를 할 수 있는데 10만 원은 순창읍에서는 쓸 수 없고 면 단위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평이 먼저 나왔다.
“가게도 많지 않은데 어디서 쓰라는 거지?”
도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정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더 큰 마트, 더 편리한 상권, 더 많은 선택지를 두고 굳이 작은 면 단위 안에서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설명을 듣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소비가 면 단위 안에서 돌아야 한다. 그래야 작은 가게 하나라도 더 생기고, 작은 식당 하나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다.”
그 말 속에는 단순한 지원 정책 이상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농촌기본소득은 단순히 돈을 나누어 주는 복지가 아니라, 지역 안에서 돈이 순환되도록 만드는 지역 생태계 회복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본래 농촌 기반의 나라다.
예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농업은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촌이 무너지면 결국 나라의 기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우리 국토의 약 63%는 산지다. 도시처럼 넓은 평야가 많은 나라가 아니다. 산과 산 사이에 작은 마을들이 이어져 있고, 그 속에서 오랫동안 농촌 공동체가 형성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의 농촌은 단순한 '지방'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역사, 먹거리와 공동체를 지탱해 온 삶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인구는 지나치게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 인구는 약 980만 명, 경기도는 약 1,400만 명 수준이다. 두 지역만 합쳐도 2천만 명이 넘는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약 5천1백만 명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머지 전국 도시와 농촌에 약 2천8백만 명 정도가 흩어져 살아가는 셈이다.
문제는 그 남은 지역들 가운데 상당수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교육, 문화시설을 찾아 도시로 떠난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도 많다. 학교는 폐교되고, 버스 노선은 줄어들고, 작은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행정안전부와 여러 연구기관에서는 이런 지역들을 '인구소멸위험지역'이라고 부른다.
순창군 역시 대표적인 인구소멸위험지역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내가 살고 있는 복흥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정부가 농촌기본소득 시범지역으로 거론한 곳들 역시 대부분 이런 소멸 위기 농촌들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강원, 전북, 전남, 경북 등 인구 감소가 심한 군 단위 지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면 단위 소비'를 강조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 지급된 돈이 모두 대도시 프랜차이즈나 대형마트로 흘러간다면 농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식당과 카페, 마트와 정육점, 빵집과 구멍가게 안에서 돈이 돌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 역시 요즘은 전보다 마을 안을 더 둘러보게 된다.
묏골식당에도 한 번 더 가게 되고, 별장산닭 식당에도 들르게 된다. 작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늘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읍내나 도시로 나갔을 소비가 이제는 마을 안에서 한 번 더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소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의 발걸음이 늘어나면 마을에 온기가 생긴다. 식당 불이 켜지고, 카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늘어난다. 작은 가게 하나가 유지되면 누군가는 그 마을에 계속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마을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또 다른 가능성도 열린다.
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이 작은 책방이나 공방, 카페를 열 수도 있다. 로컬푸드 시장이나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생길 수도 있다. 도시 사람들이 주말마다 쉬러 오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결국 농촌을 살리는 힘은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싶어지는 분위기'에서 나온다.
물론 농촌기본소득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과 의료, 교육과 문화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효율만 추구해 왔다. 가장 큰 곳, 가장 빠른 곳, 가장 편리한 곳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 결과 작은 마을은 점점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농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말한 “더 불편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그런 뜻일지도 모른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역 안에서 서로를 살리고,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이야기 말이다. 사라지는 농촌을 살리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한 번 더 마을 식당에 가고, 한 번 더 카페에 들르고,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작은 소비 하나가, 사라져 가던 마을의 불빛을 다시 켜는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한동안 문을 닫았던 나의 북카페에도 불이 켜지는 시간이 곧 오면 좋겠다.
이서영 / 작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