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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출향인

자전거의 추억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6.05.21 15:01 수정 2026.05.21 03:01

↑↑ 이승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
ⓒ 순창신문


자전거는 사람의 힘을 사용해 굴러가는 가장 조용한 탈것이다. 걷는 것보다 빠르고 자동차보다 느리다. 그 어중간한 속도가 인간의 마음을 오래 붙든다. 시속 십 킬로미터에서 이십 킬로미터 사이. 그 속도 안에서는 바람이 피부에 와 닿고, 강물의 냄새가 코끝에 스치고, 계절이 지나가는 풍경이 보인다. 너무 빠르면 보이지 않을 것들이 그 속도에서는 끝내 보인다.

주말이면 나는 자전거를 탄다. 우이천을 지나 중랑천을 따라 내려가 여의도한강공원까지 가기도 하고, 북쪽으로 길을 잡아 구리시 쪽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남쪽 길은 길게 이어진 강변의 풍경이 좋다. 자전거길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강물은 도시의 그림자를 품고 천천히 흐른다. 북쪽 길은 조금 다르다. 사람의 수가 적고 강폭은 넓어진다. 바람은 한결 느슨해지고, 페달은 오래 같은 속도로 돌아간다. 나는 어느 길 위에서도 자전거의 속도를 생각한다. 사람의 다리로 움직이는 속도. 몸이 풍경과 화해할 수 있는 속도.

자전거에 대한 기억은 대개 넘어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나는 수도 없이 쓰러졌다.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에 흙이 박혔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몸은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어느 날 중심을 찾았고,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갔다.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두 손으로 핸들을 붙잡고 앞으로 달려 나가던 그 순간의 환희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에만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전거가 먼저 가르쳐주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자전거를 타고 순창 읍내 학교까지 십오리 길을 통학했다. 버스는 많지 않았다. 버스를 놓치면 난처했다. 손을 흔들어도 그냥 지나가버리는 날들이 있었다. 길가에 남겨진 학생은 막막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꿈을 꾼다. 버스가 멈추지 않고 떠나버리는 꿈. 지각에 대한 걱정으로 발을 구르는 꿈. 어린 시절의 막막함은 오랫동안 사람 안에 남는다.
그래도 우리들은 자전거를 탔다. 동네 친구들과 선후배들, 다른 마을 아이들까지 자전거를 타고 길 위에서 만났다. 자전거는 우리를 친구로 만들었다. 학교 운동장에 세워둔 수십 대의 자전거들은 서로의 형편과 시간을 말없이 증명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길을 달려 돌아오던 기억도 선명하다. 어둠 속의 논길은 적막했고, 몇몇 구간은 두려웠다.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이름 모를 벌레 울음이 들판에 번졌다. 그 길을 우리는 페달을 밟으며 지나갔다. 두려움은 지나가고 나면 추억이 되었다.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나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서 구멍 난 자리를 찾아 고무 패치를 붙여 수리했다. 손에는 본드 냄새가 배었지만, 다시 빵빵해진 자전거 타이어는 희망과 행복이 빵빵해진 기분이 들게 했다. 불편했지만 그 불편 속에는 삶의 기술이 있었다. 몇몇 친구들과는 주말이면 멀리까지 하이킹을 가기도 했다. 다른 마을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도 자전거를 탔다. 그 시절의 자전거는 단순한 운동기구가 아니라 세계로 나가는 발이었다. 가난한 시절의 자유였다.

오십 대가 되어 다시 자전거를 탄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타느냐고 묻는다.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내가 자전거를 타는 까닭은 그것만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다 보면 오래 잊고 지냈던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어린 날의 흙먼지와 저녁놀,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어두운 귀갓길의 냄새가 바람 속에서 다시 돌아온다. 몸은 늙어가지만 페달을 밟는 동안 마음은 오래전의 시간 가까이로 돌아간다.

자전거는 인간을 너무 빠르게 데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자전거의 속도는 사람의 호흡과 비슷하다. 숨이 조금 차고, 땀이 조금 배어나고, 풍경이 눈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속도. 나는 그 속도를 사랑한다. 자전거는 나를 앞으로 데려가면서 동시에 지나온 시간 속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 느리고 단단한 두 개의 바퀴 위에서, 나는 아직도 삶의 균형을 배운다.

이승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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