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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 일 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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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중3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그녀가 나의 자취방에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체력장 검사장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성격이 매우 활달한 소녀였다.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끼리끼리 패를 지어 읍내 거리를 헤집고 다닐 만큼 바빴지만, 고등학교를 광주로 간 후부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무렵,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있다가 고3이 되어서야 경우 마음을 수습한 상태였다. 당시 불만이 많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소녀도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중3 때 잠깐 반짝거렸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서로 겉돌기만 한 셈이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해서 내가 자취하는 곳까지 찾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함께 자취하던 내 친구와도 잘 아는 사이여서 우리 셋은 마치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친구가 밥상을 들였다. 식사를 마치고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3이니 주로 진학 이야기를 하였겠지만, 대부분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였으리라. 그녀가 시계 보더니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서둘렀다. 그래서 나는 산 너머에 있는 그녀의 동네까지 데려다주겠고 나섰다.
우리는 읍내 거리를 지나 작은 내를 건너 그녀의 마을 쪽으로 갔다. 그날따라 휘엉청 밝은 달이 길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살짝 비탈진 길을 걷다가 우리는 길옆 작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못다 한 이야기가 남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실 앞길이 막막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는 어둡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나에게는 성적이 시원스럽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는 부모님이 늘 마음에 걸렸다. 문득문득 졸업하자마자 취직할까도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중3 때만 해도 철없이 깡충거렸지만, 고3 때는 모든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더 침울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하찮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위로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이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깜짝 놀라면서 시계를 보니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차, 큰일이다 싶어 당황했지만, 이미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여기서 날 샐까?”
그녀가 화들짝 놀랄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노숙(露宿) 경험을 그녀와 공유하게 되었다. 해 뜰 때까지 있으려면 자리가 편해야 할 것 같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언덕 아래쪽을 얼핏 보니 크고 작은 묘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에게 여기가 공동묘지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닌 통학로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이 언덕에 올라온 적이 없다고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묘들이 선명하게 보이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늦은 밤에 산길을 헤치고 귀가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 무렵 강원도 울진과 삼척에 간첩이 침투하여 외딴집 소년 이승복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소식에 온 세상이 경악했다. 그날 이후 늦은 밤 산골짜기를 건너서 집에 갈 때마다 무서운 장면이 스쳤다. 이 산골짜기에서 진짜로 간첩이라도 만난다면 그가 나를 살려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렇게 불안하고 무서울 때마다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 그 순간을 견뎌냈다.
“까짓것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그날 밤, 공동묘지 언덕 위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온몸을 휩싸고 있는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자정이 지나 통행금지 사이렌까지 울렸으니 더 이상 도란도란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 소리를 듣고 누가 신고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깊은 밤에 고3짜리 남녀가 공동묘지 위에 앉아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수많은 오해와 눈총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누구도 이런 우리를 곱게 보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고, 우리는 등을 맞댄 상태로 앉아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눈만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면서 새벽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악‘소리를 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졸고 있던 그녀가 화들짝 깨어 작은 목소리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비비고는 다시 보니 새벽바람에 나무와 풀잎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최초의 새벽이 그렇게 왔을 것이다. 동쪽 하늘이 검붉게 비치더니 이윽고 대동산 귀퉁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경직된 팔과 다리를 움직이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와서 그 꼭두새벽에 그녀를 마을까지 데려다주었다. 다행하게도 마을 사람 하나 만나지 않았다. 새벽이슬을 맞고 들어온 나를 바라보는 친구의 눈초리가 따가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청춘 남녀의 치기 어린 행태를 보면 그 시절의 그녀와 내가 떠올랐다. 그날 밤,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은 나는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어린 시절 가졌던 청순한 꿈을 오래 가꾸지 못했다. 결국 그녀와 나의 인연은 더 이상 진도를 빼지 못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동창회에 나갔다가 그녀와 한마을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를 보자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거친 세상 휘돌면서 살다 보니 과거를 추억할 시간도 없었을까. 그리움이야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겠지만, 데미샘에 찰랑거리는 물이 어제 뿜어져 나온 물이 아니듯 한번 흘러간 인연을 어쩌랴. 어렸을 때 읽은 김유정의 소설 〈봄봄〉이나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청순한 추억 하나 간직하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어디에 살든 어린 시절 그 모습대로 활달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