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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만 / 북일여고 교사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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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첫 주에 또 고향을 갔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방문하기에 너무나 익숙한 움직임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우선 금요일 오전 헌재의 탄핵 선고가 일단 몸과 마음을 가볍게 했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겨우 한 페이지가 접힌 것뿐이라는,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들을 발본색원해야 함을 각인하게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고향행 운전 중에도 지나치는 산과 들판의 풍경이 그날따라 평화롭고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고, 우리들의 일상이 이토록 소중함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농사 준비 차원에서 밭에 비닐 치기 작업을 하고, 조상묘 주변을 정리하는 등 어머니의 지휘 아래 고향에 오면 의례적으로 하는 일들을 했다.
예보처럼 오후에는 비가 내리길래 야외 일을 접고, 어머니랑 읍내에 나갔다. 오래 미뤄둔 이발을 하고 싶었고, 어머니도 오래간만에 파마를 하게 했다. 도시에서 이발을 늘 해왔지만 미력하나마 고향에 보탬이 되었으면 해서 며칠을 미뤄두고 이날을 기다린 것이다. 이발 장소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랜 단골로 지금도 영업 중인 시장 근처의 이발소였다. 아버지께서 늘 이용하셨던 그 자리에서, 그 주인께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뭉클했다. 아버지께서 다소곳이 앉아서 이발을 하던 그 좌석에 앉는 순간 눈가가 아린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돌아가신 지 23년이나 지났지만 아버지가 문득 보고 싶었다. 살아계신다면 함께 손잡고 이곳에 와서 함께 머리를 깎았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 좌석에 앉아 내가, 대를 이어 이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발소 내 설비나 각종 집기들이 옛것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른바 추억 돋았다. 단순히 머리를 짧게 깎는 게 아니라 과거를 소환하고 추억을 상기하며 기억을 연장하는 시간들이었다. 밖에 내리는 비가 그날따라 내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오랜 단골 미장원에서 파마를 시작했다. 시간이 좀 걸린다는 53년 경력의 주인장 말씀에 읍내 주요 공간들을 돌면서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잠시나마 음미했다.
순창객사 -간아지 정려비 -순창시장 -양지천 순으로 걸었다. 읍내에서 중고교 시절 6년을 보냈음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살피지 못했던 공간들이었다. 알기 전에는 영영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몸을 움직이며 눈여겨보니 색다르게 보였다. 지난 세월과 역사가 켜켜이 묻어 있었고, 거기에 담긴 사연과 누적된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또한 수선화와 꽃잔디 등으로 새 단장한 양지천은 우리 고향이 어떻게든 약진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객사와 정려비가 과거를 증명하는 유물이라면 시장은 현재를, 양지천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으로 느껴진 것이다. 심은 지 얼마 안 된 꽃들이라 작고 여리지만 소중히 가꾸고 잘 유지한다면 깊이 뿌리내리고 멋진 자태를 뽐낼 것 같았다.
미장원에 돌아오니 주인장과 손님(어머니)이 두런두런 대화 중이었다. 슬쩍 끼어들며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니 손님이 많은 게 이제는 싫으시단다. 나이가 많아서 힘이 달리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아서 최소의 손님만 받고 현상 유지만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장날에도 손님이 많이 안 온단다. 단골손님들이 하나둘 저세상으로 가셨기 때문이란다. 그 말씀들을 들을 때마다 왠지 애잔했다. 미장원도, 그 내부 집기들도 무수한 세월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한층 뽀글뽀글해진 어머니의 머리를 보며, 힘겹게 낑낑대며 성하지 않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서 손님의 머리를 만져주는 주인장의 모습을 보며, 나이 듦을 생각했다. 살아있는 모든 건 늙어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두 분이 온전히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더욱 애달프고 숙연했다. 순창군에서 어르신 이ㆍ미용비로 연간 12만원씩 지원해주기에 그걸로 어머니께서 직접 파마 값을 치렀다. 이렇게 사회적 복지가 현장의 구석구석에 촘촘하게 잘 미쳤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쭉 말이다.
고향에서 보낸 2박 3일이 너무나 느리고도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긴데도 그 자리에서 쭉 살아온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고향 어르신들을 관찰자 시점으로 보면서 변함없이 계속 그 자리에 남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고향 어르신들, 모두 만수무강하십시오.
김승만 / 북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