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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독자기고

순창 새마을금고 창설과 MG새마을금고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5.03.28 09:41 수정 2025.03.28 09:41

느티나무는 대부분 동네마다 어김없이 주민들의 생활중심 터전에 풍성하고 넉넉하게 한두 그루쯤은 우뚝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심벌마크를 느티나무로 하는 새마을금고가 우리들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가 온다.

지난 3월 5일에 새마을금고 탄생 50여년 역사 최초로 새마을금고 이사장 전국 동시선거가 있었다. 필자가 새마을금고에 관하여 남달리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추억에서 연유한다. 보릿고개 시절 초등학교 소풍을 가는 날이면 용돈을 주셨던 외삼촌이 계셨는데, 그 외삼촌이 나중에 알았지만 순창에서 지금의 새마을금고를 이룬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그런 추억을 안고 외삼촌에게 새마을금고 이야기를 들은바 있어, 이번 새마을금고 전국 동시 선거를 거치면서 그 시절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외삼촌 신정차(현.82세) 회장은 풍산면 소촌마을 출신이다. 1968년에 재건국민운동 순창군위원회 책임자인 사무국장으로 부임 범국민의식개혁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하셨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MG새마을금고의 모태가 된 ‘마을금고’ 설치운동이다. 박정희 군사정권하에서 시작된 범국민의식개혁운동이 1964년 7월 사단법인 재건국민운동중앙회를 설치 민간으로 이양되면서 본격적인 재건국민운동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 때 우리 순창에서도 재건국민운동 순창군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재건국민운동에서 ‘밝은 사회운동’을 추진했고, 곧 이어 ‘새마을운동’으로 변경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 때 밝은 사회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400여개에 가까운 순창군 전 마을 안 다닌 곳 없이 다 다니면서 국민의식개혁 교육을 했는데, 그 때는 사람들이 모이라고 하면 왜 그리 잘 모였는지 모르겠다. 고 회상했다.

낮에는 동네 당산나무(느티나무) 아래나 넓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좌담회를 하고, 밤에는 사랑방에 모여 교육을 했는데, 마을금고 설치에 대해서는 부녀자들이 남자들도 알아야 한다며, 남자들에게도 마을금고 교육을 시키게 하는 등 주민들의 참여 의식이 높았단다. 그 결과 1971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순창군 전 마을에 마을금고를 설치했었고, 새마을운동과 함께 이 마을금고에 “새”자를 붙여서 지금의 “새마을금고”라는 이름이 생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도 결국은 돈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며 협동정신의 일환으로 새마을금고 육성을 강력하게 추진하게 했다. 한마디로 새마을운동금융기관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당시 회자된 말이 ‘1인을 100사람을 위하여~.’ 라는 협동정신 구호가 있었다. 한 사람의 1만원은 푼돈이 될 수 있지만 100사람이 모으면 한 사람의 생활자금이 되고 소득자원이 된다. 는 점을 강조하면서 새마을금고 육성에 전력을 다하게 했다.


순창의 새마을금고 최초 통폐합이 ‘MG새마을금고’로 거듭나다

그런 방침에 따라 순창군에서 직원 세 명과 자전거 등 예산을 지원해 주었고, 읍·면에 새마을운동 교육을 다닐 때는 군수와 함께 다니기를 해마다 수십 번씩 했다. 기억에 남는 군수로는 남금윤, 김연철, 강상원 등을 꼽았고, 마을단위 시범마을이었던 적성면 지북새마을금고 김진홍씨의 수고도 높게 평가했다. 의식개혁운동은 마을주민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군 산하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읍사무소 회의실에 집합시켜 놓고 이틀간 걸쳐 교육하기도 했다. 어렵게 만들어진 새마을금고가 갈수록 성장을 거듭하기 보다는 규모가 작아 영세한 곳은 운영도 부실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날로 더해가는 상황을 직면하기에 이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착안한 것이 마을단위 새마을금고를 읍·면단위로 통폐합하여 규모화 된 새마을금고를 만드는 것이었다. 쌍치면과 복흥면, 적성면을 필두로 규모화 된 새마을금고가 생기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고 여러 문제점을 해소하게 됨에 따라 도지부와 중앙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고, 그 사례를 도와 중앙에 나아가 발표하게 되었다.

1972년 신용조합법이 제정되면서 순수 임의조직에서 정부 규제를 받기 시작했으며, 1973년에는 새마을금고연합회가 발족하면서 재건국민운동 순창군위원회에서 새마을금고연합회 산하 순창군지부로 전환이 되었다. 이 때부터 정부지원이 본격화 되었고, 순창에서 시작된 새마을금고의 통폐합 성공사례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규모화 된 새마을금고 육성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82년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부실금고 통폐합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추진하게 된다. 1983년에는 새마을금고 안전기금설치운용에 따라 조합원 예·적금보증과 회원재산이 일정 보호를 받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결과 지금의 MG새마을금고로 거듭난 것이다.

한편, 부실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도지부로 올 것을 수차례 요청해 왔지만 전주에 갈 가정형편이 못 되어 거절하기를 수년, 그러다가 전국적으로 부실금고 문제가 크게 대두되자 중앙에만 있던 검사과를 시·도지부에 신설하면서 1986년 전라북도지부 검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무질서한 새마을금고와 빈번한 사고금고들을 수습하여 정상금고로 육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도검사부장, 관리부장, 사무국장으로 연이어 승진 역임하는 동안 도내 새마을금고가 장기적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던 것이다.

↑↑ 신정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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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신정차 회장이 순창에서 시작한 새마을금고의 통폐합과 도지부에서 부실금고 정리 정상화라는 업적이 오늘날 전라북도 MG새마을금고를 있게 했다는 것에 이론이 없는 중론이다. 이로 인해 지금은 지역 원로로서 새마을금고중앙회 전북지역본부 퇴직자 모임인 느티나무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새마을금고가 지역사회와 서민경제발전 더 나아가 제2금융권으로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함이 매우 자랑스러워서 당시 역사의 한 주역의 족적을 남기고자 합니다.

/ 글쓴이 전. 풍산면장 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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