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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 대 영 / (전)한국식품연구원장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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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 다닐 때 잘못 배운 것이 몇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생물시간에 인간이 고릴라에서 침팬지로 진화하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의 뿌리를 올라가면 침팬지라고 하는 것이다. 또 역사 시간에 세계 4대 문명만 있는 것으로 배워서 그러면 우리 민족의 뿌리도 황하문명(黃河文明)인 처럼 배웠다. 또 하나는 우리 음식의 종류는 궁중음식, 종가음식, 서민음식 세가지라고 배웠다. 오늘날 유전자 분석기술의 발전에 인류의 게놈을 분석해보면 침팬지와 인류가 공통조상을 가졌을 뿐 침팬지가 우리 조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의 뿌리는 중국의 뿌리인 황하문명과 공통조상을 가졌을 뿐 황하문명이 우리 문명의 뿌리가 아니다. 황하문명의 뿌리는 천산산맥 아래로 이동하여 황하에 자리잡은 것이고 우리 민족은 천산산맥 북쪽의 우랄산맥을 넘어 아무르강을 건너온 요하문명(遼河文明)이다. 마치 우리문화의 뿌리가 중국인 것처럼 착각하여 중국에서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으려고 하였다. 사대주의에 편승한 것으로 대단히 잘못한 방법이다. 똑같은 이유로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중국에서 들여온 궁중음식이나 종가음식은 우리음식이 아니다. 우리 음식은 우리 서민음식 하나일 뿐이다.
우리 음식은 우리의 땅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우리 음식이다.
김치와 장을 비롯한 발효음식이나 양념과 장이 들어간 모든 음식은 우리 어머니가 슬프고 처절한 한 많은 삶 속에서 자식을 배곯지 않도록 가족을 지켜오기 위하여 온갖 정성과 지혜를 다하여 노력한 끝에 탄생한 음식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어머니 음식 이외에 아버지 음식이 따로 있다. 궁중음식이나 종가 음식이다.
인류 역사상 아버지들은 음식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적어도 고려시대 전까지는 아버지 음식이 없었다. 고려시대까지는 어머니가 제사를 지냈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상에 대한 제사나 의례 같은 것에 대하여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고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쓰면서 문명화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당시의 문명화는 곧 중국의 문명을 받아 곧 유교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양반(남자)들이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다.
자식을 먹여 살리고 가족을 꾸며 나가려는 음식이 아니라, 하늘과 조상들을 섬기는 것, 즉 제사 음식과 의례 음식에 대하여 더 관심이 많았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에는 공맹사상(孔孟思想)과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중심이 되면서, 군신, 사람, 남녀, 노소, 부부, 유생과 일반인 등 직업 차별이 심하여졌다. 소위 한자를 아는 사람하고 모르는 사람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기준으로 삼았고, 남자들은 우리 어머니들이 먹는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더 특별한 (유별난) 음식을 찾아서 이야기해야 차별적으로 우대받는다고 생각하였다. 이 시대부터 남자들에 의하여 제사와 의례, 행차 음식, 소위 ‘아버지음식 (양반음식)’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체로 맛이 없어서 일반 국민들한테는 자리잡지 못하고 궁중이나 사대부의 본산인 서원에서 거의 강요에 의하여 자리잡기 시작한다. 양반들은 음식을 만드는 경험과 지혜로서 우대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인 유교의 본산인 중국 한자책을 통하여 음식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중국인에는 평범한 음식이 우리에게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제사 음식을 우리 전통 음식과 구분하려 하였다. 궁중음식인 의례 음식은 맛보다는 놓는 방식이나 형식이 매우 중요하였으며, 우리 밥상문화와 완전히 달랐으며, 고추(양념)나 장을 쓴 음식이 없다. 중국음식은 튀겨야 맛이 나는 데 우리나라에 들여와서는 기름이 없어 튀기지 못하니 맛이 있을 수 없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의례음식이나 종가음식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양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내어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조선의 홍만선(洪萬選)(1643-1715년)은 중국의 제민요술, 거가필용을 기반으로 쓴 산림경제(山林經濟)(17세기 말)를 출판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보면 최초의 음식에 관한 책이 되어버렸다.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음식이 우리 음식인 것처럼 둔갑시킨 책이다. 그 후 유중림(柳重臨)은 산림경제에 우리나라의 음식을 보태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를 출판한다. 보완한 내용으로는 된장, 청국장, 고추장 등 우리 어머니 음식이 한자 이름으로 들어갔다. 양반인 유중림은 당시에 우리 음식에 고유 우리말이 있었음에도 우리말은 언문이나 아낙글로 폄하하고 배운 사람의 글은 한자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 음식 이름을 한자로 만들어 증보산림경제에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를 두고 몇몇 학자가 증보산림경제에 우리 음식 이름이 처음 한자로 나왔기 때문에 그때 이전에는 우리 음식이 없었다고까지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증보산림경제에 나온 한자 이름이 우리 음식 이름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우리 어머니 음식에 관한 책은 17세기 안동장씨(張桂香)가 한글로 쓴 책, 음식디미방(閨壼是議方)이 처음으로 장과 고추를 이용한 음식에 대하여 만드는 법까지 자세하게 나온다. 우리 어머니 음식을 나름대로 체계화여 기록된 최초의 책이다. 이어서 19세기말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 우리 어머니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꽃이 피우게 된다.
우리 음식 탄생의 배경은 여기 우리 조상, 어머니에 있다. 가족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먹여 살려야 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삶속에서 나왔다. 양반들이 쓴 한자책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는 우리나라 본래의 어머니 음식과 거리가 있다. 조상과 하늘과 땅에 드리는 아버지 음식이다. 어머니 음식은 먹는 것(맛)을 추구했지만 양반음식은 드리는 형식을 추구했기 때문에 음식에서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 음식은 지혜의 음식이었고 아버지 음식은 베껴온 지식의 음식이었다. 궁중음식이나 종가 음식은 더이상 우리 음식이 아니다.
권대영 / (전)한국식품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