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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 일 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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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가끔은 엉뚱하게 상상하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귀가하면서 한 마을의 동급생 친구 넷이 가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왜 하필 가출을 생각했을까.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 나에게는 특별히 가출할 만한 이유가 없었지만, 친구들이 함께 가출하자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말았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른 친구들과는 생각이 달랐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고, 친구들과 다르게 생각하면 혼자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말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 그날 새벽에 가출하기로 했다. 각자 집에서 돈을 훔쳐 가지고 나와 새벽에 마을회관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특별히 가출해야 할 만큼 절실한 이유가 없었다. 집이 싫다거나 부모님에게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출하기 전날 오후에 친구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결의를 다졌지만,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나서자니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었고, 안 따라가자니 친구들을 배신한 꼴이 되니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고 아버지께 이 일을 이실직고하여 친구들의 가출을 막을 수도 없었다.
나는 뒤척거리다가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살짝 잠이 들었다. 아머니가 아침밥을 차려 놓고 깨우길래 일어났더니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속으로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확인하면서 친구들 일이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가서 알아볼 수도 없었다. 가출 의지가 유독 강했던 친구 둘은 틀림없이 새벽에 떠났을 것이다. 다만 뒷집 사는 친구의 행적이 궁금했다. 그도 처음에는 적극적이었는데, 거사 전날 살짝 꽁무니를 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침나절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안에만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조심스럽게 마을 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놀고 있던 4학년 후배들이 나를 보더니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 안 갔나 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가출하기로 친구와 약속하고선 남아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모른 척하고 “누가 어디 갔는데?”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넷이서 가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미 두 친구가 그런 소문을 낸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방인이 된 것처럼 뒤통수가 따가워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후배들에게 배신자라고 조롱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오는데, 뒷집 사는 친구가 모퉁이에 있는 묘등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워하면서 그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왜, 안 갔어?”
“그냥”
사실 그와 나는 가출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나 나나 가난한 집 아들이었지만, 늘 부모님이 가족들을 위해 바쁘게 일을 하였고, 형제들과도 우애있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출을 결행한 친구들은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았다. 두 친구는 조손가정에서 성장하면서 나를 고통이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도 제 나이에 입학하지 못해서 나이도 나보다 한두 살이 더 많았다.
뒷집 친구와 나는 어찌 보면 배신자로서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낯선 객지에서 고생할 일을 생각하면서 걱정했다. 이런 사실을 담임 선생님이나 반 친구들이 알면 우리에게 뭐라고 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배신자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두 친구의 가출을 방관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든든했던 동급생 두 명이 사라져 버린 마을은 겨울방학 내내 조용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가고 있지만, 친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날이 찾아와도 그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어느 눈 내리고 찬 바람이 부는 날 저녁에 한 친구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했다. 친구들은 그날 새벽 마을회관에서 우리를 한참 기다리다가 마을 고개를 넘었다고 했다. 임실 관촌역에서 도둑 열차를 타고 서울 용산까지는 잘 갔다고 했다. 그러나 용산역에서 하차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다가 강제로 차에 실려 ‘시립아동보호소’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친구들은 서울 가서 돈도 벌고 세상 구경도 마음껏 하고 싶었지만, 시설에 수용되면서 군대처럼 통제된 생활을 했다고 했다. 왜 혼자만 왔냐고 했더니 그도 곧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친구들은 서울 구경은커녕 시설에 수용되어 찬 겨울을 보내다가 동상까지 걸렸고,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아서 철조망을 제치고 도망쳤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그때 내가 친구들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집안의 분위기 탓이 아닐까. 아버지는 엄하셨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특별했다. 늘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조금이라도 잘한 일이 있으면 대놓고 칭찬하지는 않았지만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 몰래 가출한다는 것은 내가 선택할 일이 아니었다. 집안 분위기가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한 점은 지금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어린 시절 힘들어했을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때 두 친구는 그런 아픔을 잘 극복하고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면서 아울러 친구들도 잘 챙기는 든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