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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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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주인공 박두만은 오랫동안 쫓던 살인 용의자를 만난 뒤 이렇게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한국인들에게 밥은 꽤 자주 오르내리는 대화 주제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는 “밥 먹었니?”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고 하고, “밥값을 해야지.” “이게 내 밥줄이야.” “콩밥 한번 먹고 싶은 거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등과 같이 밥을 활용한 표현이 많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하는 것일까?
밥에 대한 어렸을 때의 기억은 엄마가 지어준 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엄마는 네 남매를 밥 먹여 학교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했다. 불쏘시개 가리나무에 불을 댕기고 솔가지를 부러뜨려 불을 지핀 가마솥에는 밥을 짓고, 석유곤로에서는 국이나 찌개를 끓였다. 밥이 다 되어가면 불을 죽이고 아궁이 앞으로 불기를 옮겨놓아 뜸을 들인다. 가끔 방에 들어와 필요한 것을 가지고 나갈 때 아직 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엄마의 치마에서 풍기는 불 냄새를 맡곤 했다. 밥을 짓는 엄마의 불 냄새는 나를 안심시키고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씻기 위해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마루에는 네 남매의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직 밥이 뜨거웠으므로 도시락 뚜껑은 열린 채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밥 냄새. 어린 시절 나의 아침은 어김없이 그렇게 시작됐다. 불안은 없었고 확신과 사랑만이 가득했다.
집을 떠나 자취를 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엄마가 지어준 밥을 따라갈 맛은 단연코 없었다. 설익거나 죽이 되거나 했던 ‘실패한 밥’, 많은 인원이 먹어야 했기에 대량으로 지어 맛없는 ‘단체 밥’, 일에 치여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뚝딱 들이키는 ‘허겁지겁 밥’, 비지니스 상 먹어야 했던 ‘밥줄 밥’ 등 엄마를 떠나서 경험한 밥들은 늘 불안을 동반했다. 인간의 삶이 불안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듯 엄마아빠의 슬하에서 먹는 밥을 제외하고는 늘 불안의 밥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아빠가 되어 아이들과 먹는 밥에서도 책임감 같은 것이 끼어들어서인지 불안이 섞였다. 물론 사랑하는 아이들이 잘 먹고 무럭무럭 크는 것을 볼 때는 뿌듯함이 불안을 상쇄하긴 했다.
밥을 먹는 행위는 심리와 정서를 동반하고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감정노동을 동반하는 밥 먹기는 괴롭고 견디기 고약하다. 협상이나 손익을 따져야 하는 대상과의 밥 먹기는 독약에 가깝다. 오래된 친구들이나 뜻에 맞는 지인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먹는 밥이야말로 보약 중의 보약이다. 밥맛은 관계의 척도이자 전부인 셈이다. 밥은 내 삶을 비추고 내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건강과 행불행의 결정타가 된다. 밥은 내 삶이고, 내 삶은 밥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두 종류로 분류하곤 한다. 밥맛을 돋게 하는 책과 밥맛을 떨어지게 만드는 책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신경숙의 소설들은 밥맛을 잃게 만든다. 몸이 쇠약해지고 시름시름 앓게 될 것만 같다. 반면에 <태백산맥>이나 <토지>와 같은 소설들은 밥맛을 돋을 뿐만 아니라 말술까지 부른다. 책이나 영화나 예술작품들이나 취미생활 등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밥맛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나는 밥맛이 떨어지게 하는 결정은 되도록이면 안 하려고 한다. 내가 오늘 내릴 결정이 내일 아침에 밥맛을 떨어지게 할 것 같으면, 나는 그 결정을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밥맛이 내가 내리는 많은 결정들의 바로미터인 셈이고, 그런 의미에서 밥맛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몸이 되고, 내가 읽고 보는 것이 마음이 된다. 내가 누구와 같이 밥을 먹고 어떤 책을 읽고 배우냐에 따라 내 삶의 색깔은 달라진다.
완전한 밥은 엄마의 밥, 부모님 슬하에서 먹는 밥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고 나누면서 먹는 밥을 꿈꾼다. 사랑이 충만해지면 밥맛도 충만해지고 인생도 충만해진다. 밥을 완성하는 건 사랑이다. 사랑을 완성하는 건 밥이다. 사랑이 첨가된 밥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밥은 인생이고, 인생은 밥먹기에 달렸다.
자꾸, 자주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자.
이승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