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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승 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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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걷는가, (…) 이 세상에 관여하는 모든 철학적·심리적·정치적 체제가 궁금해할 만한 질문인데, 인간이 걷기 시작한 이래 아무도 이렇게 물은 적이 없다니 참 이상한 일 아닌가? ― 오노레 드 발자크, 『보행이론』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걷는다는 것은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하는, 오직 몸으로 세계를 밀고 나가는 곡진한 행위이다. 걷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과 세상이 한편이 된 상태이다. 한쪽 다리가 지구를 딛고 지탱하고, 다른쪽 다리가 뒤이어 전진하면 몸은 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지능을 담당하는 뇌와 지구를 딛고 있는 다리 사이에 골반은 지능과 보행이 만나는 화음의 무대가 된다. 뇌와 다리와 골반은 음악이 되고, 팔은 춤을 춘다. 호흡은 세계를 들이마셨다 내뱉고, 세계는 가슴을 지나 마음까지 들락거린다. 평균 4킬로미터의 속도는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리듬을 창조한다. 걷기의 속도와 리듬은 생각의 속도와 리듬을 낳는다. 장소를 넘나들다 보면 시간을 넘나드는 일이 더 쉬워진다. 걷기는 계획하고 추억하고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리듬이다. 걷기는 사랑을 사랑답게 완성한다. 손등이 스칠 듯 말 듯, 닿았다가 닿을 듯하다가 못내 아쉬워 다시 닿고야 마는 그 반복에 사랑은 사랑다워진다. 걷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토리를 창조한다. 걷는 속도와 리듬은 마음의 속도와 리듬이고, 걷기는 세계와 스토리를 창조하며 몸과 마음과 세계가 하나가 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걸을까? 밖으로 나와 걸어야 나와 세상이 연결되는 것이다. 걸어서 도달한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우리는 이동을 위해 걷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걷기도 하며, 심지어는 성지순례의 걷기도 있다. 마당을 걷기도 하고, 시골길을 걷기도 하고, 산길을 걷기도 하고, 강가나 바닷가 해안을 걷기도 하고, 도시의 길을 걷기도 하고, 해외의 낯선 거리나 광장을 걷기도 한다. 걷는다는 것은 몸이 땅을 척도로 삼아 스스로를 가늠하는 방식이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 장소에 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풍성한 열매는 걷는 자만의 몫이다. 걷지 않으면 그 열매는 없다.
걷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아무나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엔 최소한의 조건이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자유로운 시간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장소와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체가 있어야만 걸을 수 있다. 물론 걷겠다는 의지도 중요하다. 오래 전 부와 권력을 가진 부류들은 일반인들이 걷는 이동을 위한 걷기와 구별 짓기 위해 집안 실내에 갤러리를 만들거나 인공정원을 만들어 걸었다고 한다. 걷기는 특권이거나 엄숙한 것이었다. 한편 가난한 시민들은 먹고살기 바빠 시간도 부족했고, 질병에도 취약했다. ‘street’라는 영어단어에 여성명사가 붙으면 거의 부정적이거나 퇴폐적인 의미가 되는 것만 봐도 여성에게 걷기는 제한적이었다. 특권이자 숭고한 것이었던 걷기가, 그러니까 폐쇄적 의미의 정원이 자연으로 나오면서 예술과 철학과 문화와 역사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고, 시민의식이 확장되었다. 물론 걷기의 권리를 얻기 위해 시민들은 끝없는 유혈 투쟁을 해야만 했다. 걷기의 권리는 시민권의 시작이었다. 개인적 걷기는 물론 다 같이 걷는 행진과 축제는 피로 싸워 쟁취한 시민권의 산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나는 매일 아침 마을회관 앞에 모여 6학년 마을회장 인솔하에 30분 정도 걸어서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했다. 이즈음엔 산이고 들이고 끊임없이 걸었다. 놀이의 무대에서 걷고 걸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순창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2십리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졸업식 날, 나는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집까지 걸었다. 나는 첫사랑을 그 길에서 만났다. 풍산면 시골에서 시작된 나의 걷기는 순창읍 읍내 생활을 거쳐 서울의 도시길에 이르렀다. 서울의 골목길을 걷고, 밥벌이를 위한 출퇴근 길을 걷고, 천변을 걷고, 둘레길을 걷고, 도봉산과 불암산과 수락산과 북한산을 걷는다. 여의도와 광화문 광장에선 같이, 함께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오직 몸으로 세계를 밀고 나가는 곡진한 행위인 것. 삶이 곧 걷는 것이다. 걸어왔던 여정이 내 인생이다. 나아가 나는 광장에서 같이 걸을 것이다. 싸워야 할 것이 있다면 걸으며 싸울 것이다.
이승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