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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독자기고

(짧은소설) 에피소드 14. 대화하지 않는다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5.02.19 10:24 수정 2025.02.19 10:24

↑↑ 박 진 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 순창신문---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몇 해 전부터 수인의 시댁에서는 설을 지내니, 마니 말이 많았다. 이런 설레발에 대해, 설 전날 시댁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까지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뭐래? 설마 지금 와서 설을 안 지낸다고 그런 거야?”

함박눈을 가르며 지리산 휴게소에 닿았을 때 수인의 남편 산에게로 시숙의 전화가 걸려왔다. 시숙과 통화를 끝낸 산에게 수인이 물었다.

“큰삼촌이 갑자기 여행 일정 잡는 바람에 이번 설에 삼촌들은 안 올 모양이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친정으로 바로 가야 하나?”
“이미 장을 다 봐 났으니, 우리랑 형네만 지내는 거지.”
“미리 이야기했으면 이번 설은 안 지낼 뻔했네.”
“그랬겠지.”

삼촌들이 참석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이번 설은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수인과 남편 산이 큰집에 도착했을 때 수인의 형님은 올 설이 마지막이라고 통고했다. 차에서 짐을 내리기도 전이었다. 마치 오지 말아야 할 곳으로 온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일 년 만에 추석과 함께 한 해 먼저 가신 시어머니의 제사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삼 년 만에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수인은 명절이 언젠가 사라질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오는 사람이 적은 관계로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절약되었다. 그 덕에 형제 내외가 둘러앉아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시삼촌들은 이제 안 오시기로 하셨어요?”

수인이 말을 꺼냈다.

“삼촌들도 사위·며느리가 생겼고, 큰형님 내외가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이제는 안 오실 모양입니다.”

아주버님이 대답했다.

“그럼 이제 삼촌들 볼 일도 없어지는 건가?”

산이 말했다.

“그렇지. 어른이 안 계시는데, 여기 오는 것도 이상하지.”

산의 형수가 말했다.

“명절 때마다 정치 이야기하면 골치 아팠는데……. 잘 됐지 뭐.”
“누가 그렇게 정치 이야기를 하는데요?”

수인이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고 아주버님께 물었다.

“작은삼촌이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자기 말에 토를 달면, 그냥 빨갱이라고 화부터 내니까, 대화가 안 돼요.”
“삼촌들이 다 그렇지. 삼촌들 세대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산이 말했다.

“단순히 세대의 문제가 아니야. 문중 단톡방에 한 백여 명 정도가 있는데 거기에서 최근에 동생뻘 되는 종신이가 야당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거야. 읽어보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떠도는 소리를 짜깁기해서 올렸더라고. 그래서 ‘여기 이런 거 올리지 말고 내려라. 문중 대소사 소식 주고받는 목적으로 개설된 방이다’라고 댓글을 달았지. 그랬더니 왜 안 되냐고 그래서 이런 거 올리면 싸움 된다고 했지. 그런데 거기에 대통령과 집권당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결국 싸움이 시작된 거야. 종신이가 끝까지 반대 여론 형성하고 글을 안 내려서 내가 단톡방 나와버렸지. 직장 단톡방도 마찬가지야.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사람이 종신이랑 똑같은 내용을 단톡방에 올린 거야. 요즘은 어디를 가도 다 그런 것 같아. 골치가 아파서 거기도 나와버렸어.”
“사람들은 왜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싸울까?”

산이 말했다.

“대화하는 법을 몰라서 그런 거지. 아무도 대화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거든. 그러니까 미숙한 거야. 정치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잘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TV에서 정치인들끼리 늘 싸우기만 하니까 그것도 일종의 문화가 학습된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자기 생각만을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과격한 모습만 봐 왔잖아.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수인이 말했다.

“그게 진영 논리에 매몰돼서 그런 거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익만 좇는 거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객관성이나 합리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야.”

산이 말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게 가장 문제지. 당장 나라의 수뇌부가 비어버리면서 국민의 삶이 엉망이 되어버렸잖아. 우리 경찰서만 해도 아직 인사발령도 못 하고 말이야.”
“경찰청장이 구속 상태라서 그런 건가요?”

수인이 물었다.

“네, 모든 발령장에 경찰청장 직인이 있어야 하는데 수뇌부가 없으니 모두 정지된 거죠.”
“아, 정말 그렇겠네요. 경찰, 행정, 군대가 모두 그렇겠네요. 아주버님 퇴임이 언제라고 하셨어요?”
“올해 말입니다. 적어도 계엄 대통령 직인이 남지는 않게 되겠지요. 퇴임을 코앞에 두고 현직 대통령이 계엄 선언하는데 기가 막히더군요.”

아주버님의 말에 수인이 헛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30년 넘게 공직에 계셨는데, 정말 불명예 퇴임할 뻔하셨네요.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우니 북한과의 관계도 불안하고, 트럼프 발 관세 폭탄까지 세계가 들썩이는데, 내란 문제로 파국을 맞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네요.”
“정치가 국민을 위험 요인으로부터 막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위험 상황에 몰아넣고 있으니 그게 문제인 거지. 당장 우리도 명절에 모여서 나라 걱정만 하고 있고…….”

산이 말했다. 수인과 아주버님 내외와 함께 앉은 자리에서는 그 후로도 한참 국내 정치를 지나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과 트럼프 취임 후 주목받기 시작한 비트코인 시장과 자식들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신 것뿐인데 피로가 몰려왔다. 사실 수인은 겨우내 피로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계엄 이후 놀란 마음 때문인지 좀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번 설은 어지러운 국내 상황만큼이나 기후도 불안정해서 눈길로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마음졸이며 오지 않았던가. 다행히 형님이 먼저 일어서는 바람에 자연스레 수인도 따라 일어나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피로한 몸과는 달리 정신은 좀처럼 수인을 놓아주지 않았다.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맞은 주말 가족이 늦잠을 자는 동안, 수인은 혼자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전히 잠이 깨지 않은 채로 커피를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이 지난 연휴 동안 다 쏟아 내지 못한 찌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우중충했다. 집안을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어제 친구 예선과 통화한 일이 떠올랐다. 좋게 끝난 통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수인은 어쩌다 정치 이야기가 나왔을까 생각했다. 평소엔 그럴 일이 없었는데, 시국이 혼란스러워서 그런지 요즘은 어딜 가나 정치 이야기로 흘렀다. 분명한 건 수인이 먼저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예선과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곧 피로가 몰려왔다. 예선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정확하지도 않았다. 어느 부분에선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수인은 저도 모르게 “예선이 너는 어디서 그런 소식을 접하는 거야. 뉴스를 봐야지. 이상한 거 보지 말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이상한 걸 보긴 뭘 본다는 거야! 그러는 너는 매일 뉴스 챙겨 보니?”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이미 격앙되기 시작한 예선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왜 화를 내고 그래?”
“화는 이미 네가 내고 있어!”
“내가? 네 얘기가 너무 황당해서 하는 소리지.”
“그러는 너는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안다고 그러니?”
“TV에서 저렇게 떠드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렇게 시끄러운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야? 21세기에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고 집권당이 어떤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지 국민이 모두 지켜봤잖아.”
“거대 야당에서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거, 그게 제일 문제야. 여당이든 야당이든 머릿수가 안 맞아서 그렇다니까. 뭐든지 균형이 맞아야 하는 거라고. 그러니 독재를 막기 위해서라도 숫자가 모자란 곳에 힘을 실어 줘야 하는 거고. 넌 학교 다닐 때부터 숫자에 약하더니 여전하구나.”

예선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더니 급기야 수인에게 시비를 걸었다. 예선의 유치한 면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예선아, 정치가 어디 단순한 숫자 놀음이니. 아무리 야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시행이 안 되는 거라고. 민생정부가 되겠다던 정부에서 민생 관련 법안은 모두 거부했잖아.”
“야당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고 통과시키니까 그렇지.”
“야당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서 대통령이 계엄을 통해서 야당을 무력화시키는 게 정당하다는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예선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수인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엄연히 법이라는 게 있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견을 조율해 나가야 하는 거지.”
“그렇게 치면, 계엄도 대통령 권한으로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잖아.”

예선이 자신 없는 말투로 말끝을 흐렸다.

“계엄도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밀어붙인 거니까 위법이지. 그런데 넌 이 시점에서 계엄을 두둔하고 싶니?”
“그게 아니라, 야당이 여당과 합의도 없이 자꾸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반동 형성이라고 봐!”
“야당에서 어떤 법안을 통과시켰는지 알고는 있고? 무슨 내용인지를 봐야지.”
“그런 너는 대통령이 뭘 거부했는지는 알고 있어?”
“그거야…….”

수인은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매일 뉴스를 본다고 해서 구체적인 법안의 명칭 따위가 머리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어쩜 이렇게 아는 게 없을까.’

막연하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착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선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려고 해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답답했다. 수인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예선이 다시 나이에 맞지 않는 유치한 면모를 드러냈다.

“김수명이 좋으면 너나 좋아할 일이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지 말고.”

수인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예선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김수명을 내가 언제 봤다고 좋아하니? 이건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나는 김수명 싫어. 그 사람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받아먹은 돈은 또 얼마나 많고.”
“김수명이 무슨 돈을 받았다는 거야. 사람 죽은 게 왜 또 김수명 때문이고. 좀 찾아봐. 지금 진행 중인 재판, 조금만 찾아봐도 다 알 수 있는 일이야. 보수든 진보든 언론에서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팩트라는 게 있다고.”
“그런 거 찾아볼 만큼 정치에 관심 없거든. 정치 이야기는 이래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하는 게 아니야.”
“정치 이야기는 예선이 네가 먼저 꺼냈어.”
“내가? 왜 정치 이야기를 했을까?”

예선이 당황해서 잠시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네 남편 직장 잃은 게 대통령이 계엄을 일으켜서 그렇다고, 속상해하면서 시작한 거지. 그리고 가까운 사람끼리 정치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게 어딨어. 제대로 알고 하면 되는 거지. 싸울 게 아니라.”

수인이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하지만 예선은 다시 유치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아! 몰라 몰라. 저녁 준비해야 해.”

이 말을 끝으로 예선은 진짜로 전화를 끊었다. 수인은 예선과 아무리 격의 없는 사이지만 예선의 무례함만큼은 받아주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예선이 정치는 잘 모른다고 했으니, 길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신이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에 서둘러 끊었다는 걸 수인은 알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먼저 전화를 걸어올 사람도 예선이란 걸 알았다.

예선의 남편은 명예퇴직 후 작년부터 수소충전소 건설 현장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12·3 계엄 이후 수소충전소 건설 사업이 중단되어버렸고 예선의 남편 일도 잠정적으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선은 수인에게 당장 남편의 월급 없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2월이 되면 회사로부터 연락이 올지 모르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안부 겸 연락한 것이 그만 정치 싸움이 되고 말았다. 예선은 분명 자기 남편의 일이 중단된 것이 계엄을 일으킨 대통령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을 문제 삼았다. 수인은 예선의 태도가 미숙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활의 불안에서 오는 불만으로 비치기도 했다.

수인은 예선과의 통화를 되짚어보다가 숫자 개념이 없다며 공격하던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선과의 대화 중 어디에서 소리를 높이고 화를 냈는지 돌이켜 보았다. 막연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신념으로 자리 잡아 사람들은 더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두 개의 귀와 하나 입’을 떠올렸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수많은 채널이 수많은 입이란 생각이 들었다. 입들이 지나치게 많은 세상에 수인도 하루쯤 조용히 귀를 닫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침 준비를 끝냈다. 노트북에서 조용한 음악을 골라 틀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수인은 늦잠을 자는 남편과 아이를 깨우려다가, 테라스로 나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마음속에 찌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은 구름이 흩어지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진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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