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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승 만 / 북일여고 교사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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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마지막 장마저 내리며 처분한다.
2024년도 과거 속으로 묻힌다.
뜻한 바가 이뤄지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긴 시간 공들였던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부질없는 욕심이었고, 후폭풍도 컸다. 개인적으로 나락에 빠졌고, 일말의 자존감마저 추락했다. 그러면서 핑곗거리나 한풀이 대상을 찾았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이 그 목표를 방해한, 그리 아름답지 못한 방향으로 균형추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질풍 같은 12월이 이어졌다. 역사를 되돌린 뜬금없는 비상 계엄 선포, 그리고 국회에서의 신속한 해제와 탄핵 가결, 그 이후 밝혀진 내란 혐의는 경악 그 자체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헌법을 최우선적으로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내란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어이없고, 기가 막힌 현실이었다. 그동안 무능, 무지, 무책임에 혀를 내두르며 여기저기서 쓴소리가 쉴새 없이 터져 나왔으나, 이번 일은 차원이 달랐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법적, 논리적 정당성도 없는 해괴망측하고 괴이한 사태이다. 오히려 21세기에 살고 있는 민주 시민의 위치와 우리의 현실을 극명하게 자각시켜줬다. 매일 실시간 뉴스에 이목을 집중하게 되고, 여의도며 광화문, 안국동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K-집회’는 민주주의를 누리기만 했지 막중한 책무는 약하다는 젊은이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게 하는 희망의 싹이요, 새로운 ‘민의 분출쇼’였다. 현장에서 느낀 감동은 더 크고 위대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뭉칠 줄 아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자발성에 우리의 저력을 새삼 실감한 것이다.
연말에 치명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무안공항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종일 이어진 뉴스 특보의 상황은 179명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바꾸기 어려웠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도 유가족들의 찢어지는 아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이렇듯 2024년은 아름답게 그려낼 수 없는 한 해이다. 용어상으로도 그렇다. 세계적으로 뉴스의 주목도가 높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발표한 올해의 단어로 ‘Brain rot(=뇌썩음:자극적인 디지털 콘텐츠에 길들어진 현대인의 정보 과잉과 피로감)‘을 발표했고, 미국 메리엄웹스터는 ’양극화‘, 미국 딕셔너리닷컴은 ’드뮤어: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롱하는 말’, 호주 맥쿼리 사전은 ‘엔시티피케이션(=배설물화되다:온라인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품질의 저하와 이익 추구의 결과로 서비스나 제품이 점차 악화되는 현상’ 등이 선정됐다.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표현들이 대세이고, 시류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국내의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결정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도량발호(跳梁跋扈)’가 1위로 나왔다. 이는 제멋대로 권력이나 세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하다는 뜻으로 현 시국의 풍자와 비판이 담겨 있는 표현인데, 알고 보니 비상계엄 선포 전날인 12.2(월)까지 조사한 것이리고 하니 교수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일이 그다음에 벌어진 것이다.
심란하고 울적한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또 다른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할 기회마저도 가질 수 없다. 육십갑자로 본다면 갑진년의 충격과 참사,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반작용의 저항이 난무하고, 수구 기득권의 몸부림이 극렬한 상황에서 일거에 부조리와 폐단을 솎아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아울러 참사의 슬픔을 달래고 해원(解冤)하는 일은 더욱 기약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국난이나 대위기 때마다 발휘해온 뛰어난 ‘회복력’과 강한 민주주의 정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은 저력이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똘똘 뭉치며 잘 추스르고 대처해왔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도 주목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고, 오리무중의 시국이지만 긍정의 힘 쪽으로 방향키를 돌리고 싶다. 을사년(음력 기준이기에 올해는 설날인 25.1.29부터 시작임)에는 정말로 웃을 일만 있는, 행복하고 멋진 시간들이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끝으로 24년 5월에 영면하신 신경림 시인의 시 ‘세밑에 오는 눈’으로 글을 마친다.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등과 가슴에 묻은 얼룩을 지우면서
세상의 온갖 부끄러운 짓, 너저분한 곳을 덮으면서
깨어진 것, 금간 것을 쓰다듬으면서
파인 길, 골진 마당을 메우면서
밝은 날 온 세상을 비칠 햇살
더 하얗게 빛나지 않으면 어쩌나
더 멀리 퍼지지 않으면 어쩌나
솔나무 사이로 불어닥칠 바람
더 싱그럽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창가에 흐린 불빛을 끌어안고
우리들의 울음, 우리들의 이야기를 끌어안고
스스로 작은 울음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서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어서
김승만 / 북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