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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 대 영 / (전)한국식품연구원장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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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의 사업 중에 우수한 전통식의 발굴과 계승발전을 위하여 ‘대한민국식품명인’ 지정사업이 있다. 그 사업 중의 하나로 순창 문옥례할머니가 고추장명인을 지정받으셨다. 명인이 돌아가시면 그 명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명인의 후손중에서 명인을 이어받는다. 이번에 문옥례고추장의 명맥을 이어온 셋째 아들 조종현이 명인을 받았다. 조종현 명인 지정과 함께 순창고추장 명인에 대한 소개 책자가 나왔다.
순창고추장을 잘 대변한 책자로 조종현 명인이 조씨 일가 7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면과 순창고추장을 담는 과정 등을 자세히 잘 그리고 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아쉬운 면은 순창고추장의 문헌과 역사를 기술한 부분이다. 고추장의 역사가 일관성이 없고 정리가 되지 않아 앞뒤가 맞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 이유는 글 쓴 작가가 과학적인 상식이나 식품에 대하여 이해나 통찰력 없이 있는 있는 글을 다 긁어는 모아 놓기만 하였지 분석과 탐구를 통하여 진실을 찾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태껏 우리 식품의 역사를 왜곡한 사람들의 비과학적인 통설까지도 받아 살려 언급하려다보니 생긴 문제이다. 그 부분은 이 문헌 저 문헌, 심지어 과학적이지 않은 설까지 다 갖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다. 순창고추장의 역사를 바로 알고 이를 제대로 알리는 것은 순창고추장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왜 이런 혼란이 왔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승정원 일기를 토대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기록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왕조실록(王朝實錄)’이 있고, 또 하나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다. 이름 그대로 왕조실록은 왕의 정사(政史)를 기록한 것을 후대 사가(史家)가 기록을 집대성하여 만든 역사서이고, 승정원일기는 왕실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기록한 일기이다. 조선시대 왕중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왕이 영조이다. 영조는 어렸을 때 궁밖에서 자라서 우리나라 전통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고추장을 즐겨 찾았던 왕이다.
반찬중에 고추장이 제일 좋았다고까지 이야기하였다 (饌饍中苦椒醬好矣) (승정원일기 영조 33년 5월 7일). 영조는 조선왕조 27대 왕중에서 21대 왕이다. 왕의 순서로 보면 21대이니까 조선 후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선 중후반기(1724-1776), 50년을 이끈 임금이다. 궁궐에는 사가 한 명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영조 시대 승정원일기 기록을 보면 글씨체가 각각 다르다. 즉 승정원일기를 사가 몇 명이 돌아가면서 기록하였다. 다양한 사가들이 있었지만 그 당시만해도 우리말의 한자 기록에 대한 표준말이 없었다. 당연히 고추나 고추장에 대한 표준어는 없었으므로 사가마다 표현이 다르다. 예를 들어 영조 25년 7월 24일의 승정원일기에는 천초(川椒)와 고추장(苦椒醬)을 즐겨 먹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때 고추를 천초라고 기록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승정원일기에서 고추장을 ‘苦椒醬’과 ‘古椒醬’으로 혼용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고추장을 ‘胡椒醬’으로도 기록하고 있다(승정원일기중 영조50년 (1774년) 2월13일). 고추장을 어떤 사가는 ‘苦椒醬’으로 어떤 사가는 ‘古椒醬’으로 그리고 어떤 사가는 ‘胡椒醬’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추장을 ‘苦椒醬’과 ‘胡椒醬’을 혼용한 것은 훈몽자회에서 이야기한 대로 ‘고쵸’를 어떤 사람은 ‘호쵸’와 비슷하게 발음하고 고추를 胡椒(호초)로 표기하는 경우와 같은 이치이다. 오늘날 표준어 개념에 매달려 ‘胡椒醬’을 후추로 만든 장으로 후추장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따라서 한자 胡椒가 항상 ‘후추’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 마찬가지로 호초나 천초로 표시되어 있다고 무조건 후추라고 하는 주장은 음식역사와 우리말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때 나오는 호초나 천초는 앞뒤 문장을 보면 고추다. 당시에는 표준어가 없었다.
흥부가에 호초 수백석이란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후추가 나지 않는 데 필요하지도 않은 농촌에서 후추 삼백석은 있었을까? 이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호초나 천초를 후추로 번역해버린 것이다. 고문헌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잘못 번역하다보니 오류가 생기고 그 오류를 그대로 갖다 순창고추장에 인용하려다 보니 오류가 생기고 앞뒤가 맞지 않고 일관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인문학자들이 ‘고추가 임진왜란 때 고추가 들어 왔다’는 잘못된 설을 기계적으로 믿다보니 임진왜란 이전부터 나오는 호초나 천초는 앞뒤를 따져 보지 않고 무조건 후추라고 번역해버리는 습성이 있으니까 발생한 문제이다.
이러한 인식이 과학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그대로 인용만 하다보면 후추로 고추장을 만들었다니, 만초장이 고추장의 어원이라는 등이 내용이 책자에 들어가게 되다보니, 문옥례 순창고추장 명인집에 나오는 고추장의 문헌 역사가 앞뒤가 맞지 않고 진실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사가에 따라 실제로 존재하는 고추와 고추장을 따로 다르게 한자로 기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한자의 글에만 의지하여 우리 고추장을 이해하면 고추장의 수백수천년의 고추장의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1-2백년 역사밖에 되지 않고, 심지어는 고추장이 처음에는 후추(호초, 천초)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고추로 만들었다는 것과 같은 황당한 설까지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다.
권대영 / (전)한국식품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