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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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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라북도 순창군의 한 시골 동네에서 4남 2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우리 아버지는 1916년에 권씨 문중의 4대 독자로 태어나시고 아버지가 4살 되실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갖은 고생을 다하시면서 키우셨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가 남편인 우리 할아버지를 잃으시고 친정인 빗바우로 막둥이로 얻은 아들과 다섯 딸을 데리고 들어오신 것 같다. 빗바우에 들어오셔서 우리 집을 아버지께서 손수 지으셨다고 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여섯 살 아래인 1922년에 구림면 오정자 안골에 김씨의 문중에서 태어나셨다. 우리 어머니 위아래로 외삼춘이 한 분씩 두 분 계시고, 이모가 위로 두 분 계셨다.
열여섯 되던 해에 우리 아버지께 시집오셔서 일제의 악랄한 탄압을 견디고 약탈해 나갔던 모진 시기를 견뎌야 했으며, 한국전쟁을 피난살이 하면서 견디어 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4대독자를 길러내셨던 모진 할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뎌내셔야 했다. 할머니의 불같은 성격을 아버지가 닮았고, 손자인 나도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다고 보는 데, 아마도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럴 것이다. 다만 불같은 성격이 오래가지 않아서 곧 후회하고 오히려 뒷수습하기에 쩔쩔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내가 4남2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했지만, 어머님은 늦은 29살 되실 때 큰형을 얻고 나니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그러나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보통이 아니셨다.
우리 어머니는 이런 할머니의 모질고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어서 상을 받치셨다고 하고, 밥을 드실 때도 맘에 맞지 않으시면 밥상을 마당에다 던지기까지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이런 할머니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어 할머니에서 배워가면서 잘 배우셨는지, 아니면 시집오시기 전부터 잘 배우셔서 원래 음식을 잘하셨는지 몰라도 동네에서 가장 음식을 맛있게 하시고, 장을 제일 잘 담그시고, 김장도 제일 잘하시고, 술과 유과를 빗는 것도 제일 잘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고추장, 된장, 간장, 술, 유과, 조청을 제일 잘 빗는 손맛 좋은 어머니로 통했다.
제가 어릴 적 기억을 되살펴보아도 아버지는 일을 과히 좋아하시지는 않으셨던 것 같았다.
다른 집은 정제에 나무 땔감을 쌓아 놓고 있었지만 우리 집은 땔감이 항상 여유가 없어 보였고, 쇠죽 끓이는 깔(꼴)도 항상 부족하여 어머니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가 4대 독자이신 관계로 우리 집은 거의 매달 한 차례씩 제사를 지내다시피 했다.
어떤 달은 한달에 제사가 세 번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고모들은 멀리서 자식들을 다 데리고 우리집에 오셔서 함께 제사를 지냈다.
떡과 술, 식혜 등 거의 모든 제사상은 어머니가 며칠전부터 준비하여 다 차리셨다.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고 새벽닭이 울고 나서야 가족들은 제삿밥을 나누어 먹었다.
제삿날을 앞두고 어머니는 언제나 제주(祭酒)를 직접 빚어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술 빚는 어머니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제사지낼 때는 시루떡을 직접 지었고 명절 때는 인절미나 가래떡을 직접 만들어 놓고 조청에 찍어 항상 나누어 먹었던 것도 잊혀지지 않으며, 유과도 직접 만드셨다.
다른 집 유과는 구울 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들쭉날쭉 했지만 우리집 유과는 골고루 아주 예쁘게 부풀러 올랐다.
우리 어머니가 제사를 지낼 때인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각 집에서 제사가 있으면, 모든 집에서 술은 집에서 친히 빗어 제사를 지내거나 잔치를 지냈다. 술이 빚을 때 술찌게미 먹고 해롱해롱 했던 아이가 한두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유신 시대부터 국가의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 세금을 내는 양조장 막걸리는 단속을 하지 않고 가정에서 전통적으로 비법을 이어받아 빗는 술은 국가에 세금 안낸다고 다 밀주라 하여 대대적인 단속을 하였다.
우리집에서도 제사때 술을 빗는다고 밀고가 들어갔는지 순사라고 하는 단속원이 들이닥치자, 어머니는 새파랗게 겁에 질려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지금도 어머니의 그 얼굴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 후로 우리 어머니는 술을 더 이상 담그시지 않았다. 이후 결국 우리 집만의 가양주는 전승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간신히 버텨온 우리 집 술은 이렇게 허무하게 맥이 끊겼다.
그 가양주를 빚어서 파는 것도 아닌데 단속까지 하여 집에서 빗는 모든 술을 단속하여 사람을 대대적으로 감옥에 보냈다. 우리나라 전지역에서 모든 술은 이때 전통이 끊겼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대대손손 전해져 온 김치, 고추장 만드는 비법으로 맛있는 음식을 행복한 가족 밥상으로 선물했다.
된장국, 비빔밥, 유과, 어느 것도 내게는 최고의 맛이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세계의 유명한 식품연구가인 나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위대한 재산인 조상들의 노하우를 기록이나, 자료 심지어 노하우를 이어받지 못하였다.
만일 우리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이라도 이 모든 기술을 기록하고 우리 어머니가 갖고있는 검증하고 재현하여 세계에 우리나라 전통문화로 남겼을 것이다.
순창음식의 노하우는 미래세대에 매우 중요하다. 미래 선진국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지금이라도 이 가치에 신경써야 한다. 그래야 순창이 산다.
권대영 / 호서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