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순창신문 |
|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 계절이다.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하며 한국의 봄철 기근을 가리키는 말로 배고픈 시기를 보내는 것이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를 빗대어 보릿고개라 부른 것이 어원이다.
올해로 기업 컨설팅을 한 지 벌써 15년째가 되었지만, 겨울은 경영 컨설턴트에게 있어서 보릿고개와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때이다. 특히, 정부 지원 컨설팅을 많이 하는 나의 경우 12월이 가까워져 오면서 모든 정부 지원사업이 마감되고 보통 3월 정도는 되어야 본격적으로 정부 지원사업이 시작된다.
그래서 보통 이 시간에는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쓰고 여행을 하면서 보내고 있다. 한 달 전에 시인대학 지인으로부터 2월 말에 광양 매화마을로 매화 구경을 가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모처럼 만에 남도 여행을 하며 차가운 봄바람 속에서 씩씩하고 이쁘게 핀 매화 모습을 수묵화로 남겨보고자 흔쾌히 수락하였는데 1주일을 남겨 놓고도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었다.
“ 회장님 잘 지내시죠? 지난번 광양 매화마을 구경하러 가자는 건은 잘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감기에 걸린 듯한 컬컬한 목소리로
“ 감기에 걸린 건지 코로나에 걸린 것인지 으슬으슬 춥고 힘이 없어 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일찍 연락 못 줘 미안합니다.”
코로나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칠십을 앞둔 선배의 말씀에 수긍하면서도 황금 같은 이 시간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안타까워 무작정 짐을 꾸려 전남 구례로 가는 무궁화 열차를 용산역에서 탔다.
새벽 5시 46분에 출발한 열차는 남원을 넘어 곡성으로 접어들면서 기차 창문 너머로 섬진강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봄바람에 치마 속 살을 보여줄 듯 말 듯 흐르는 섬진강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기차는 어느덧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간단하게 읍내에서 요기하고 화엄사로 가서 구경하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코로나로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줄어 하루에 4편 밖에 없어 순천을 거쳐 광양 그리고 하동을 거쳐 다시 섬진강이 흐르는 광양 매화마을로 들어갔다.
처음 와본 매화마을이지만 옆에 흐르고 있는 강이 섬진강이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낯설지 않았다.
순창초등학교 그리고 순창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유등으로 그리고 적성으로 가서 강가에서 물고기 잡고 호피 석 주우러 간 생각이 들었다. 바로 섬진강이 흐르는 곳이다. 섬진강(蟾津江)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의 팔공산 자락의 옥녀봉 아래 데미샘이 발원지로 길이는 223km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를 굽이쳐 흐르면서 순창, 곡성, 구례, 광양, 하동을 거쳐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하나가 된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돌아가신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증조부, 고조부님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버지 때까지 순창에 뿌리를 내리고 사셨지만 정작 나는 서울이라는 섬진강 하구에 살고 있지만 않은지….
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조상님과 나는 하나가 되어 순창이라는 내 고향을 사모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23km를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온다.
“내 고향 순창에 봄이 왔다고. ”
임상국 / 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