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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언론, 그리고 순창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6.10.08 14:32 수정 2026.10.08 02:32

↑↑ 권대영 / (전)한국식품연구원장
ⓒ 순창신문


헌법상 한반도를 영토로 한 남한과 북한을 합친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오늘날 한나라 두 체제를 이루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모든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실로 남한은 경제, 군사, 문화, 삶의 질, 어느 면으로 보나 세계 10대 강국 안에 들고, 북한은 150등도 들지 못하고 오히려 하위 10대 최빈국에 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나라이다. 이렇게 된 차이의 근본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이다. 남한은 자유가 있고 북한은 자유가 없다.

생각의 자유,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 생각의 차이를 이야기(공유)하고 나눌(토론) 수 있는 자유, 생각의 차이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같은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자유, 생각이 같다는 것만으로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자유. 같은 생각을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뭉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자유가 그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강국이 된 것은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피 흘린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유 기반 위에 열심히 일하게 되고 많은 생각의 공유로 IT, 문화,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항상 이 자유를 억압하는 명분을 찾는 데 골몰하였고 지식인과 언론인을 이에 이용하였다.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가 그랬다. 한번 권력의 단맛을 아는 지식인, 언론인이 독재자보다 오히려 더 악랄하게 굴었다.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이 박정희를 보면 된다. 우리 민족역사를 왜곡하여 신라통일을 우리 민족 통일로 확대하여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지역차별을 정당화하였고, 월남의 통일을 월남 패망으로 간주하여 국가의 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을 탄압하였고, 김일성을 끌어들여 안보와 화합, 단결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였고, 잘 났다는 검찰은 경찰을 하수인으로 내세워 각종 고문으로 없는 죄를 만들어 사람을 가두고, 대법원장은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을 그리 쉽사리 빼앗으면서도 법치를 내세웠다. 독재자는 이 만행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논리를 찾으려고 지식인을 동원하였고, 방패막이로 언론인을 이용하였다.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가장 많이 동원된 방법이 언론 검열과 언론사의 강제 폐간 등 내놓고 하는 방법이었다. 또 들어내지 않고 국민을 속이는 방법으로 어용 언론인, 지식인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진실을 숨기거나 은폐하는 방법이었다. 이때 꼭 내세운 것이 국가의 안보와 국민 화합과 단결이었다.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가장 희귀한 방법은 1974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이다. 돈의 흐름을 쥐고 독재정권은 기업을 협박하여 언론사의 광고를 막아 말라 죽게 하려는 전략으로, 기업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게 하는 전략이었다. 요즈음 언론 탄압의 대표적인 형태는 권력이 돈 대신 정보를 쥐고 있어서 정보의 흐름을 막거나 왜곡하고 말꼬리를 잡아 국민을 분열시키고 기만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여 선택할 권리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순창에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뿌리를 두고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 순창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순창이 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순창이 독재자의 편에 서서 자유와 인권을 누르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호남은 남한과 북한이 대립하고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탄압하고 자유를 억눌렀던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에도 이 자유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싸우고 행동(실천)했던 세계적으로 위대한 지도자 김대중 대통령을 고향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와 같이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탄압하거나 죽이지도 않았다. 그는 많은 욕을 먹어가면서도 자기를 죽이려고 사형을 언도했던 무리에게도 보복하지 않고 용서했다. 이 자랑스런 고향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고향에 대한 사랑, 사람으로서 긍지와 자부심, 서로 생각과 힘을 나눌 수 있는 토대가 우리 순창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미래가 된다.

언론의 자유는 미래 순창군의 발전과 순창군민의 화합과 단결, 행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돈이나 정보를 잘라 언론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 순창의 발전은 획일성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보다 다양성을 가지고 각자 영역에서 서로 인정하며 행복을 추구하고자 할 때 더 커지는 것이다. 지금 순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일치된 힘보다 다양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럴 때 단합이 잘된다. 못난 사람이냐 위대한 사람이냐의 차이를 쉽게 구분한 것은 그에게 힘이 쥐어질 때 쉽게 안다고 했다. 그가 갖고 있는 힘을 만용을 부리는가 아니면 관용을 부리는가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유 억압의 고리는 항상 인권 말살과 분열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더 욕을 먹는 이유는 물론 전두환 자신의 악행에 있지만, 오히려 권력에 기대어 나쁜 짓을 하는 권력자나 기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권력이 국민을 욕보이게 하는 일이 많았다. 아니 전두환이 오히려 이를 즐기고 이러한 상황을 부추겼던 것 같다. 자유 언론은 권력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인이 이를 망각하면 백성들은 심각한 사태를 초래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기 위하여 있고 백성들의 생각과 자유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언론이라도 이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사적 민간인과 생각이 다르다고 싸워서는 안 된다. 사적 민간인과 싸우고자 할 때는 언론인이란 간판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언론인이란 완장을 떼고 싸워야 한다. 그만큼 언론인의 직무와 직위가 엄중하다.

기본적으로 공권력은 힘이 있고 개인은 힘이 없다. 그래서 언론은 권력 편보다 사람 편에 서야 한다. 언론 자유는 백성을 위한 것이다. 개인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표현을 썼다해서, 앞뒤 문맥 보지 않고 마치 특정인 폄하로 몰고가 공인도 아닌 한 개인을 궁지로 몰아가는 일을 언론인이 나서서 할 일인지를 묻고 싶다. 급기야는 관련 단체들이 마치 공인이라도 되는 양 일제히 플래카드를 걸어 규탄하는 사태까지 갔다. 분명 이는 잘못 되었다. 이런 사태를 막고 군민을 보호할 책임은 권력기관에 있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수일 동안 방치되었다. 그가 권력에 비판적이서 이 사태를 방치한 것이 아닌가, 오히려 어쩌면 권력이 이를 부추기고 방조하지 않았겠냐고 의심을 할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 일은 표면적으로 보면 작은 일로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 흐르는 흐름이나 작동 시스템을 보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대단히 잘못되어가는 징후이고 순창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자유와 가치를 추구하는 순창의 명예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군민들은 돈의 흐름, 정보의 흐름, 힘의 흐름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그런데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자유와 언론이 없는 체제의 끝을 보려면 북한을 보면 된다. 자유가 없는 어떤 나라나 지방, 체제나 공동체는 한마디로 미래가 없다.

권대영 / (전)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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