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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선비정신 계승” 제30회 순창 삼인문화 기념행사 성료

이기암 기자 입력 2026.09.18 09:50 수정 2026.09.18 09:50

ⓒ 순창신문


순창문화원(원장 전인백)은 지난 10일 강천산 군립공원 내 삼인대(三印臺,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에서 ‘제30회 삼인문화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순창문화원이 주관하고 순창군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조선 중종 때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리며 대의를 지키고자 했던 충암 김정, 눌재 박상, 석헌 류옥 삼선생의 충절과 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전인백 순창문화원장을 비롯해 최영일 순창군수, 오수환 순창군의장, 장승필 전북특별자치도의원, 박종석 삼인대보존회장, 한병태 전북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장과 삼인대 관련 5개 종중 대표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삼선생의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

순창고을 대취타의 왕과 왕비 행렬을 시작으로 시조와 민요 공연 등 식전공연이 펼쳐져 행사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으며, 참석자와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어진 기념행사에서는 순창문화원 양영수 부원장의 사회로 삼선생 문중 대표들의 관인 걸기와 상소문 낭독이 진행됐다. 이후 전인백 순창문화원장의 대회사, 최영일 순창군수의 기념사, 한병태 전북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장의 격려사, 박종석 삼인대보존회장 및 각 종중 대표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행사를 주관한 전인백 원장은 “세 선생의 정신은 세속적인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중시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을 희생하는 선비정신의 표상”이라며 “삼인대 문화행사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세 선생의 정신과 순창의 역사·문화가 후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순창문화원 관계자들이 세 선생 가운데 유옥 선생의 연고지를 방문해 생애와 업적 등을 살펴본 사례를 소개하며, 앞으로 김정·박상 선생과 관련된 유적지 방문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영일 군수는 삼인대를 “세 선생의 죽음을 각오한 선비정신을 제대로 전해주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최 군수는 “중종 10년인 1515년 세 선생이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며 소나무에 관인을 걸고 결의를 맺었던 곳”이라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몸소 실천한 모습을 알리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순창군은 올해 제30회 기념행사를 계기로 삼인대 저리탑 인근에 세 선생의 생애와 주요 업적을 소개하는 대형 안내판도 설치했다. 최 군수는 “앞으로도 종중과 협의해 수용 가능한 건의사항은 적극적으로 행정에 반영하고 삼인대 문화행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병태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원연합회장은 삼인대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옳은 것에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정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정신, 나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오수환 순창군의회 의장은 세 선생이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했던 위험을 언급하며 “500여 년 전 자신의 가족과 가문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상소를 올렸다는 점에서 그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장승필 전북특별자치도의원은 “역사와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후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잘 보존되고 계승될 수 있도록 전북특별자치도에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삼인대는 1515년(중종 10년)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 삼선생이 죽음을 각오하고 억울하게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를 결의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진성대군 시절 맞이한 첫 번째 부인으로, 연산군의 처남이었던 신수근(愼守勤)의 딸이다. 신수근이 중종반정 과정에서 살해된 이후, 단경왕후 신씨 역시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비가 된 지 7일만에 폐위됐다. 이후 장경왕후 윤씨가 산후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삼선생은 삼인대에 모여 소나무에 관인(官印)을 걸어놓고 폐위된 신씨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릴 것을 결의했다. 이들의 충절과 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744년(영조 20년) 순창의 선비들이 뜻을 모아 비석과 비각을 세웠다. 비문은 대학자 이재가 짓고, 민우수가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가 전서를 맡아 그 뜻을 기렸다.

/ 이기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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