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인물포커스 독자기고

돌아보니, 이곳이 이타카였다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6.09.18 09:48 수정 2026.09.18 09:48

↑↑ 조휘문(계칠) 시인
ⓒ 순창신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고 왔다.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오딧세우스의 그 긴 여정을 따라가는 내내 그 영화를 통해 나의 항해를 돌아보았다. 내 머릿속 화면에는 나의 항로에 닥쳤던 파도들, 암초들, 괴물들, 그리고 키르케, 세이렌, 칼립소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에 실려 나뭇잎처럼 나부끼는 배에 몸을 싣고 앞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밤 바다를 헤쳐 나가던 나의 지난 날들이 화면에 겹쳐 떠오르던 것이었다.

한때 나는 큰 정치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힘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너무 힘든 길이니 그 길을 가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져서 힘없는 사람들의 삶이 가벼워진다면 힘이 들더라도 가볼 만한 멋진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길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주변의 시기와 질투, 경쟁자들의 견제,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가 길을 막았다. 때로는 울분이 치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음이 지쳐 모두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힘들 것을 알고 덤빈 일이니 내가 견디고 내가 이겨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묵묵히 길을 걸었다. 정치라는 것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멈추면 곧 물러나는 것,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나의 길이라고 믿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나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파도는 내 배를 산산조각으로 만들 것처럼 산더미처럼 밀려왔고 물에 빠져 깊은 심연에 침몰하는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으려고 애를 썼다. 아무도 없는 밤길을 홀로 걸으며 참 외롭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할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뜻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바다에는 파도가 멈출 날이 없었다.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왔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다시 거센 바람이 불었다. 어느 날은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의 파도를 넘는 것만도 힘에 겨운 나날들이었다. 파도에 팽개쳐진 나의 육신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하데스의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나의 욕망을 넘어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구겨진 내 곁에 서서 묵묵히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던 아내, 그리고 내가 보듬어 지켜야 할 가족들을 생각하며 나는 그 깊은 심연에서 다시 떠오를 수 있었다. 거대한 정치적 명분도 엄청난 성취도 아닌 내 아내와 새끼들, 허황한 꿈을 따라 천지사방 헤매이던 나를 믿고 검은 눈동자 껌벅이고 서 있는 어린것들이 내가 좇아야 할 목표이고 내가 이루어야 할 성취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것들을 아낌없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정치적 욕망의 바다를 건너 생활의 바다로 뱃머리를 돌린 것이다. 그러나 그 바다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한 사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두렵고 떨렸으며, 순탄할 때는 또 그런대로 몸을 쉴 수가 없었다. 내 식구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견뎠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그 십년의 항해에서 내가 얻은 것은 풍랑이 심하면 배의 짐을 버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쌓는 삶이 아니라 버리는 삶, 내어놓는 삶이 우리의 항해를 한결 안전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얻은 것이다.

젊은 날 나는 니체의 말을 좋아했다. “위험하게 살아라.”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믿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 가슴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있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위험을 감수하는 목적을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욕망이 선택하는 위험과 사랑 때문에 감당하는 위험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 《오디세이》를 보면서 나는 그 차이를 오래 생각했다. 오디세우스는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선택이 선했던 것은 아니었다. 용기만큼 욕망이 있었고, 지혜만큼 오만도 있었다. 수많은 유혹과 시련, 상실과 방황을 거치며 그는 끝없이 바다를 떠돌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영웅의 승리가 아니었다. 귀향이었다. 괴물을 이기고 적을 물리치는 순간보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마침내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수많은 욕망과 실패와 상처를 지나 이전과는 다른 사람, 아니 진정한 자신이 되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나는 그것이 오디세우스의 진정한 영웅적 면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인생에는 내가 겪은 어떤 풍랑보다 더 두려웠던 또 하나의 바다가 있었다. 죽음의 바다였다. 정말 뜻하지 않게 위암 진단을 받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더 이상 관념이 아니라 실제가 되어 내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하고 남은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위기 앞에서 바라보니 이름도, 자리도, 욕망도 참으로 하잘 것 없는 것들이었다. 죽음을 앞둔 보잘것없는 나를 거들떠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에도 내 곁을 지켜 준 사람은 아내였다. 내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아내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림자처럼 내 곁을 지켰다. 힘겨움과 두려움을 이를 악물고 감추었고, 그 약한 두 다리로 내 곁에 산악처럼 버티고 서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내 모든 짐을 스스로 지고 걸었다. 나는 내가 병과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그 싸움의 주인공은 사실 아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의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의 바람이 내 배의 돛을 밀어 나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약한 아내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는데 사실 지난 세월 동안 나를 지켜 준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내가 흔들릴 때 자리를 지켜 주었고, 내가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겨 있을 때 삶의 터전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내 몸이 무너졌을 때에는 병든 내 손을 놓지 않고 내 숨결을 지켜 주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고맙다는 단어는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그리는 데 너무 초라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의 항해도 참 힘들었구나. 참 먼 길을 돌아왔구나. 큰 꿈을 품었던 시간,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밤길을 걸었던 시간, 시기와 견제 속에서 마음이 무너졌던 시간,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던 시간….

그 하루 하루가 모여 십 년이 되었고, 그 세월이 쌓여 오늘의 자리가 되었다. 우리 사업장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른바 유명 공간이 되고, 그 규모도 처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성장했으나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이곳이 나의 이타카인지도 모른다고.

요즘은 내가 손수 만든 정원을 자주 걷는다. 정원의 나무들과 꽃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무들은 자신이 견딘 겨울을 자랑하지 않는다. 꽃들도 얼어붙었던 밤을 견딘 자신의 인내를 내세우지 않는다. 추위 속에서 묵묵히 꽃눈을 다듬고 봄이 오면 그저 흔연히 피어날 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지나온 고난을 훈장처럼 내세우지 않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의 이름을 오래 붙들지 않으며, 오늘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삶. 아침에 눈을 뜨는 일, 정원을 걷는 일, 음악을 듣는 일,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행복. 예전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삶에서 가장 큰 것들이 되었다.

나는 이제 그런 가치를 깨닫고 지키고 감사하는 삶이 진정 강한 삶이라고 믿는다. 오디세우스는 먼 바다를 떠돌고서야 이타카에 닿았다. 나 역시 참 멀리도 다녀왔다. 큰 꿈도 꾸었고, 깊은 상처도 입었으며,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바다 한가운데 서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돌아왔다. 아내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켜 낸 삶의 터전으로.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내가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가족이 지난 십 년 동안 나를 지켜 주고 있었다는 것을.

내일 구울 빵 반죽이 발효되어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저녁,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아내와 함께 내가 다듬은 정원을 바라본다. 나의 시선은 여기까지. 더 이상 먼 곳을 탐내지 않는다. 내 곁에 앉은 나의 페넬로페여. 고맙다. 나의 이 자리를 이타카일 수 있게 하는 여인이여


조휘문(계칠) 시인

.


저작권자 순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