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군에 고향사랑기부금으로 21억8000만원가량의 재원이 쌓였다.
2023년 제도가 시행된 이후 해마다 기부금이 들어오면서 20억원을 넘어섰지만, 지역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기금사업은 아직 많지 않다.
‘얼마나 모았는가’라는 질문에는 21억8000만원이라는 답이 나왔지만, ‘그 돈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순창군은 기금을 무분별하게 집행하기보다 주민 의견과 의회 심의를 거쳐 지역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을 선정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순창군 자료와 담당 부서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고향사랑기금에는 약 21억8000만원이 적립돼 있다. 연도별 기금적립액은 2023년 약 4억8800만원, 2024년 약 8억5200만원, 2025년 약 6억3700만원, 2026년 약 2억200만원 규모다.
순창군은 모금된 고향사랑기부금을 기금으로 적립해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기금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은 모두 3건이다.
2024년에는 순창읍지 편찬사업이 추진됐고, 2026년에는 ‘요보호아동(부모 및 그 밖의 보호자에게 여러 요인으로 인해 보호, 양육되지 못하는 18세 미만의 아동) 주거지원’과 ‘자연친화 힐링명소 가꾸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순창읍지 편찬사업에는 1323만원이 투입됐으며, 올해 추진 중인 요보호아동 주거지원은 1억원, 자연친화 힐링명소 가꾸기는 2억2000만원 규모다.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은 아직 집행 과정에 있는 만큼 전체 사업비가 모두 지출된 것은 아니다.
결국 20억원이 넘는 기금이 적립된 것과 비교하면 현재까지 구체적인 기금사업으로 연결된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셈이다.
경천·양지천 4km구간에 2억2000만원 들여 ‘자연친화 힐링명소 만들기’
그룹홈 퇴소 요보호아동에 1인당 최대 5000만원 전세보증금 지원
21억8000만원가량의 고향사랑기금을 적립한 전북 순창군이 올해 고향사랑기금을 활용해 자연친화형 수변공간 조성과 요보호아동의 안정적인 주거 지원에 나선다.
순창군이 추진하는 올해 고향사랑기금 사업은 ‘자연친화 힐링명소 만들기’와 ‘요보호아동 주거지원’ 등이다. 두 사업에 투입되는 사업비는 모두 3억2000만원이다. 고향사랑기부금이 단순히 기금으로 적립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지역의 공간과 주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업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순창군은 올해 2억2000만원을 투입해 경천·양지천 일원에 ‘자연친화 힐링명소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다. 사업 대상은 경천과 양지천 일원으로, 양쪽 하천을 따라 4㎞여 구간을 정비하는 방식이다. 사업기간은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다.
군 관계자는 “고향사랑기금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은 경천과 양지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유지관리 사업”이라며 “풀베기를 비롯해 시설물이 고장 났을 경우 보수하는 등 전반적인 유지관리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천 정비사업이 마무리된 만큼 추가로 양지천에 사업비가 투입되는 배경에 대해 궁금증이 제기되고 있고, 고향사랑기금이 지역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두고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기존 시설 유지관리에 상당한 기금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의 구체적인 성과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고향사랑기금 사업은 요보호아동의 자립을 돕는 주거 지원이다. 순창군은 올해 1억원을 투입해 ‘요보호아동 주거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사업 대상은 공동생활가정, 이른바 그룹홈에서 퇴소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요보호아동이다.
보호시설을 떠난 뒤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학업이나 취업 등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거 안정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지원 방식도 비교적 구체적이다. 순창군은 대상자 1명당 원룸 1실을 전세 형태로 지원하며, 전세보증금은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한다. 특히 전세권자는 순창군으로 설정한다. 이는 지원 대상자에게 주거를 제공하면서도 지원이 종료되면 전세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단순 현금성 지원이 아니라 전세보증금이라는 자산을 활용해 요보호아동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고, 동시에 기금이 일회성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사업비 1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단순 계산상 최대 5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2명에게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실제 지원 인원은 대상자의 주거 여건과 전세보증금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시설 퇴소 이후의 공백을 줄이는 데 있다.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일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퇴소 이후에는 스스로 주거를 마련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순창군은 이 시기에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함으로써 자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거 불안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2025년 고향사랑기금 사업부결(4건)로 미추진
실제 2025년에도 여러 사업을 검토해 기금사업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의회 심의의결 과정에서 일부 사업이 부결되면서 최종 사업으로 선정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기금이 쌓이는 속도에 비해 사업 선정과 집행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렸던 셈이다.
고향사랑기부금은 일반적인 지방재정과 달리 기부자의 취지와 지역 발전이라는 목적을 고려해 사업을 선정해야 하는 만큼, 단순히 기금을 소진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순창군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2023년부터 주민 제안을 받아 어떤 기금사업이 적절한지 계속 검토해 왔다”며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마련된 재원인 만큼 사업을 신중하게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실제 2025년에도 여러 사업을 검토해 기금사업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의회 심의 과정에서 일부 사업이 부결되면서 최종 사업으로 선정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기금이 쌓이는 속도에 비해 사업 선정과 집행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렸던 셈이다.
군은 기금을 계속 적립하면서 사업의 필요성과 규모, 효과 등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한 일회성 사업보다는 순창의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문제에 대응하고 주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답례품 비용은 기금에서 나가지 않는다
고향사랑기부자는 일정 범위에서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데, 순창군은 이 비용을 고향사랑기금에서 직접 지출하지 않고 별도의 군 예산으로 편성해 집행하고 있다.
순창군 관계자는 답례품 비용은 자체 예산으로 편성하며, 답례품 공급업체에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향사랑기금에 적립된 21억8000만원과 답례품 비용을 단순히 합산하거나, 답례품 비용을 기금사업에 집행된 금액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고향사랑기금이 실제 어떤 사업에 사용됐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기금 적립액과 기금사업 집행액, 그리고 별도 군 예산으로 편성된 답례품 관련 비용을 각각 분리해서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부금은 모으는 것보다 ‘무엇을 남기느냐’가 중요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지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도 ‘모금액’ 중심에서 ‘기금사업의 성과’ 중심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순창군 역시 21억8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재원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는 기부금이 지역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과제가 될 전망이다.
특히 고향사랑기부금은 지역 주민의 세금과 달리 타지역에 거주하는 기부자가 순창을 위해 자신의 돈을 내놓는 제도다.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그 돈이 지역에 어떤 효과를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순창군이 기금사업을 선정할 때는 사업명과 예산뿐 아니라 사업 대상, 위치, 추진 일정, 세부 집행내역, 사업 완료 여부, 주민 체감 효과 등을 함께 공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금이 계속 쌓이는 상황에서 사업 선정이 지나치게 늦어질 경우 기부자의 기대와 실제 지역 변화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도 있다.
반대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선정한 사업이라면 그만큼 사업의 필요성과 기대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업 완료 이후 성과까지 지속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순창군은 올해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기금사업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순창군 인구정책과 관계자는 “4년 차가 되면서 기금이 20억원을 넘어섰다”며 “하반기에도 사업을 검토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향사랑기부금은 이제 ‘얼마를 모았느냐’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21억8000만원이라는 숫자는 순창군이 그동안 확보한 재원의 규모를 보여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디에 쓰였고, 누구에게 돌아갔으며, 순창의 무엇을 바꿨느냐다.
순창군이 앞으로 추가 사업을 선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부금의 사용처와 사업 성과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하느냐가 고향사랑기부제의 신뢰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순창의 고향사랑기부제는 이제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21억8000만원을 모았다는 성과를 넘어, 21억8000만원으로 순창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순창 고향사랑기부제의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
/ 이기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