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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제언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6.08.21 10:03 수정 2026.08.21 10:03

↑↑ 도림 홍성주 / 전) 순창문협회장
ⓒ 순창신문


나는 1942년도에 태어났으니 지금 84세가 됐다. 이제 얼마나 더 삶을 누릴 수 있을 런지는 알 수 없는 인생 황혼기에서 조심스러운 제언을 하나 하고 싶다. 그것은 1950년도에 발생한 6.25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우리 순창군이 겪은 상황을 되돌려보고 이에 따른 군, 의회, 순창군 각 사회단체 및 순창군민의 호응 속에 순창군민들의 단합된 행동을 함께하고픈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6.25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갔을 때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부모님 따라 시킨 대로 살았을 뿐 이지만 당시의 기억을 살려본다면 내가 지금 제언하고자하는 내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가 하여 그 당시 상황을 조금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본래 순창군 금과면 내동 리 연화마을에서 태어났고 형님 두분은 일제 때 순창농고 (지금의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시다가 6.25때 돌아가셨다. 나는 6.25직후 강천 산 (지금의 금성 산성)에 진을 치고 있던 빨치산들의 밤 노략질에 견디지 못하여 부모님이 연화 리 에서 발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빨치산들은 저녁이면 온 마을을 뒤져서 먹을 것을 모조리 가져갔으며 어느 날은 논 한필지에서 수확한 하지감자를 할머니 방 죽순 장판밑에 숨겼는데 그것을 씨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털어갔는가 하면 당시에 전등이 없기에 형님들이 보시던 책을 화덕에 태워 불을 밝히고 책도 뒤져서 가져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피해가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아버님은 발산에서도 영농이 가능한 곳에 전답이 있어서 발산으로 이주를 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곳에서 친구도 없이 지내다가 당시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 편입을 시켜주어 금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사범병설중학을 거쳐 광주고등학교로 진학하였으며 이어 수도권으로 진출하여 경기도청 기획실에서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최근 순창으로 돌아와 혼자 순창 읍에서 기거하면서 순창문인협회를 맡아 5년간 운영한바 있다. 그간 지금의 제안을 할 기회가 있었겠지만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하고자 하는 것은 그래도 이 목숨이 다하기 전에 하나의 씨앗이라도 뿌려놓아야 하지 않을 가하여 조심스러운 제안을 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글을 읽는 뜻있는 순창군민들께서는 본 제안을 계기로 보다 깊은 관심과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이루어 줄 것을 미리 당부 드리고자 한다.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6.25 때 아군 11사단에 의하여 공비 토벌 목적으로 쌍치 복흥 구림 3개 면의 민간가옥을 모조리 불태워버린 참상에 대하여 군 행정당국과 군 의회 군 각 사회단체 및 군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정부에 이의 보상신청을 하자는 것이다. 당시 민간인 학살과 피해에 대해서는 약간의 보상을 받은 사실도 있고 지금도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 같으나 당시의 재산피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거론하지 않고 현재까지 묻혀 있기에 피해상황조차 전혀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기에 이 지면을 통하여 국가 배상신청을 할 수 있는 조직 구성과 기초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군 행정당국에서 T.F 팀을 구성하고 군 의회에서는 조례 제정 등으로 활동할 수 있는 뒷받침을 하고 군민들의 여론을 모아 전국에서 유례없는 피해를 본 우리 순창군이 꼭 국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소 생각한 것을 이번에 조심스럽게 제안하면서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기대해 보고, 특히 뜻있는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었으면 좋겠다.


도림 홍성주 / 전) 순창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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