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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만 / 북일여고 교사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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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을 개척하여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을 일으킨 서명숙 이사장이 지난 4월에 작고했다. 그녀는 여성 언론인의 선두 주자이자 새로운 길의 개척자였는데, 문득 찾아온 지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황망하게도 70세에 영면한 것이다.
비록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남긴 책들을 보면 고향 제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떻게 걷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떤 지난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제주올레길이 탄생했는지가 자세히 담겼다. 이와 관련 걷기의 매력과 순창 DNA 얘기는 차후에 담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남긴 유쾌하면서도 먹먹한 묘비명 얘기를 할까 한다. 이미 30년 전에 본인이 써놓았다는 단 한 문장, “쉿, 여왕님 다칠라”이다. 그녀다운 발상이다. 척박한 길을 가면서도 뚝심 있게 이겨내고 자아존중감을 잃지 않으려는 본인만의 자기 선언이라고 생각되는 재미있고 압축적인 표현이다. 계속 여운이 남는다.
한때 참살이(웰빙)라는 말이 대유행을 했던 적이 있다. 잘 먹고 쾌적하게 인간적 삶을 잘 영위하려는 게 인간 본성이기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관심사이다. 그와 함께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잘 유지하면 삶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아직 우리말 규범 표기는 없는 게 아쉽다. 참살이와 함께 누구나 꿈꾸는 ‘웰다잉’은 결국 삶을 어떻게 사느냐,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진정성 있게 살아냈느냐일 것이고, 그 결과물이 묘비명으로 구현될 것이다.
문득 생을 마무리하며 당사자를 영원히 갈무리하는 묘비명에는 어떤 게 있을까 궁금했다. 짧은 글이나 한 문장만으로는 해당 인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치열한 삶을 살아낸 당사자의 존재 증명이 될 테니까. 더군다나 고향에 가서 90줄이신 장모님과 80줄이신 어머님을 뵐 때마다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죽음’이라는 말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애잔하게 느낀다. 생을 다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흙을 일구었고, 자식들을 위해 영혼마저 갈아넣으셨지만 이제는 삶의 뒤안길에서 한 송이 꽃으로 승화할 날을 예비해야 하는 시점을 부정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은 시간이라도 더 알차게 두 어머니들의 삶을 기억하고 잘 집약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탕달 :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조지 버나드 쇼 :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최진실 : 만인의 연인, 사랑스러운 그녀! 이 곳에 잠들다.
-르네 데카르트 : 고로 이 철학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김대중 :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기 드 모파상 :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할 것이다.
-윤이상 : 처염산정(處染常淨 : 더러운 곳에 머물러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
-미켈란젤로 :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오.
-니코스 카잔차키스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앤드루 카네기 :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누워 있다.
-마틴 루터 킹 :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위와 같은 유명인들의 묘비명들이 각각 어찌 탄생했는지 그 세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본인들의 삶을 대변하고 강렬하게 집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유한한 존재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정하고 살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좀 더 의연하고 열린 시각으로 우리네 인생을 충실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끝 모를 무더위에 순창 거주민들, 그리고 그에 기반한 모든 구성원님들, 고생많으셨습니다.
김승만 / 북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