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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에게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6.07.23 16:41 수정 2026.07.23 04:41

↑↑ 이서영 / 작 가
ⓒ 순창신문


2026년 6월 3일, 대한민국은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지도자들을 선택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이다. 당선의 기쁨보다 무거운 것은 시민과 군민이 맡긴 책임이며, 선거에서 얻은 권한보다 중요한 것은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행정을 반복하는 능력이 아니다. 달라진 시대를 읽고, 시민의 마음을 이해하며, 아직 오지 않은 도시의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다.

얼마 전 나는 한 도시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인수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두 시간 동안 인문학 강연을 하고 왔다. 50명이 넘는 인수위원과 관계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들은 강의 내내 눈을 반짝이며 메모했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단순히 행정 절차를 익히려는 표정이 아니었다.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시민을 어떻게 섬기며, 지역의 자원을 어떤 가치로 되살릴 것인가를 묻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것은 단지 새로운 지도자가 아니라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참석자는 이런 말을 전했다.

“이런 강의는 공직자들이 반드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한 번 들으면 곧 잊어버리니, 최소한 세 번쯤은 더 들어야 몸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인문학은 한 번 듣고 기억하는 지식이 아니라, 반복해서 묻고 삶으로 익혀야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만날 때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뀔 때 행동이 달라지며, 행동이 달라질 때 비로소 행정과 도시가 바뀐다. 나는 청강생들에게 나의 책 <블루노트의 인문학 사전>을 선물했다. 책 읽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인수위원장님의 말씀에 어깨가 들썩였다.

지금 시민들이 원하는 리더는 위에서 지시하고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민의 삶 가까이 내려가 경청하고, 부족한 것을 살피며,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다. 리더의 자리는 높은 곳에 앉는 자리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는 자리이다. 민심은 선거철에만 듣는 목소리가 아니다.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며 사업을 집행하는 모든 순간에 다시 물어야 하는 삶의 기준이다.

최근 부산시는 시장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를 생중계하겠다고 밝혔고, 울산에서도 주요 회의와 공직자들의 발언을 공개하는 방식이 주목받았다. 이는 대통령의 업무보고와 국무회의 공개 이후 지방행정에도 확산된 새로운 소통 방식이다. 행정의 언로가 열리고 시민이 정책 결정의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모든 회의를 무조건 공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직자가 여론의 공격을 두려워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숙의와 전문성이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공개행정이 향하는 기본 방향은 분명하다. 시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행정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행정, 질문을 두려워하는 행정, 시민의 눈을 피해 결정하는 행정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새로운 시대의 권위는 비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과 신뢰에서 나온다.

리더에게 소통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적·역사적 안목이다. 최근 제주 서귀포시 사계항에서는 약 100억 원 규모의 국비 사업으로 방파제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197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춘지등대가 철거되었다. 지역의 해양문화와 기억을 간직한 시설이었지만, 공사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 보존과 활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행정은 새로운 건물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사라진 시간은 다시 세울 수 없다. 오래된 등대와 골목, 나무 한 그루와 마을의 이야기는 낡은 시설물이 아니라 한 지역의 기억이다. 문화적 감각이 부족한 행정은 예산을 집행할 수는 있어도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개발의 속도만 알고 기억의 무게를 모르는 리더는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영혼을 지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리더는 부지런히 읽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역사와 문화, 문학과 철학을 공부해야 하며, 자신이 책임지는 지역의 오래된 이야기부터 알아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이 낮다고 보존할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만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 리더의 품격이다.

우리는 동시에 AI라는 거대한 문명 전환기에 서 있다. 2026년 6월 29일 정부는 반도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축으로 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향후 20년, 30년을 책임질 국가적 사업이자 초격차 산업강국과 국가균형발전을 함께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 제시했다.

특히 호남은 이번 프로젝트를 지역의 산업 구조와 인재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사업을 발표했다고 지역의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용수, 교통과 정주 환경을 준비해야 하고,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을 연결해야 하며,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거대한 투자 계획을 지역의 실제 성장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국 지역 리더들의 공부와 판단, 실행에 달려 있다.

AI 시대에는 배우지 않는 것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어제의 경험만으로 오늘을 판단하고, 과거의 성공 방식만 되풀이한다면 개인도 조직도 지역도 빠르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술은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미래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에 와 있다. 20세기적 사고로 21세기를 이끌겠다는 것은 낡은 지도를 들고 새로운 대륙을 찾아가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만 익힌다고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적 감성이 필요하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민원을 분류하며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의 떨리는 목소리에 함께 아파하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의 기억을 사랑하거나, 홀로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한다.

디지털 기술은 도시를 스마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아날로그적 감성만이 도시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수단이고 사람은 목적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가 첨단 기술을 손에 쥐면 행정은 더욱 차갑고 거대해질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지도자는 기술을 공부하는 동시에 문학을 읽고, 역사를 배우며,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적 역량과 따뜻한 심장, 디지털 감각과 아날로그 감성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20세기의 리더는 지시하는 사람이었다. 21세기의 리더는 질문하고 경청하는 사람이다. 20세기의 리더는 정보를 독점했고 권위로 조직을 움직였다. 21세기의 리더는 정보를 나누고 신뢰로 사람을 움직인다. 20세기의 리더가 조직을 관리했다면, 21세기의 리더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공동체의 가능성을 연결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똑똑한 리더가 아니다. 인문학적 리더, 심장이 따뜻한 리더, 섬길 줄 아는 리더가 필요하다. 세상은 넓고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는 사람, 자신이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사람, 오늘도 책을 펼치고 시민에게 배우며 미래를 공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리더의 공부는 개인적인 교양을 쌓는 일이 아니다. 한 도시의 운명과 수많은 시민의 삶을 지키는 책임이다. 책을 읽는 리더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을 발견하고, 역사를 공부하는 리더는 지켜야 할 가치를 알아보며, 미래를 공부하는 리더는 아직 오지 않은 위험과 기회를 먼저 읽는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도 끝내 도시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리더의 철학과 진심이다.

배움을 멈춘 리더에게 미래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배우고 시민을 섬기는 리더에게 미래는 지역과 대한민국을 도약시키는 가장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이서영 / 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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