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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치 풍물 소년에서 대통령상 고수로 … 순창 출신 오흥민 씨

윤효진 기자 입력 2026.07.03 10:17 수정 2026.07.03 10:17

“북소리 하나로 소리를 살린다”

ⓒ 순창신문


판소리 무대에서 관객의 시선은 대개 소리꾼에게 향한다. 그러나 소리의 결을 살리고, 흐름을 붙잡고, 감정의 높낮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이는 소리꾼 곁에 앉은 고수다. 북 하나로 소리의 길을 열고 닫는 사람. 그 묵직한 자리에서 순창 출신 국악인이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상을 품에 안았다.

순창군 쌍치면 출신 오흥민(38) 전주시립국악단 단원이 제46회 전국고수대회 대명고수부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국고수대회는 고수 부문 단일 대회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상이 수여되는 권위 있는 대회다. 오 씨는 김세미 명창과 호흡을 맞춰 최고 등급인 대명고수부 정상에 올랐다.


꿈꾸던 상, 한 계단씩 오른 끝에 품다

오 씨에게 이번 대통령상은 단순한 수상이 아니었다. 고수를 시작하며 마음속에 품어온 목표이자, 오랜 시간 연습하며 견뎌온 과정의 결실이었다.

그는 “고수를 시작하면서 이 길을 택했을 때부터 꿈꾸던 상이었다”며 “마지막 최종적인 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동안 연습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고 말했다.

수상의 기쁨 뒤에는 고마운 얼굴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는 “묵묵히 응원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스승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통해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 보답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 씨는 2024년 우수상, 2025년 최우수상에 이어 올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 해 한 해 계단을 오르듯 쌓아 올린 결과였다. 그는 “대회에 참가하며 저보다 어린 친구들, 또 저보다 연배가 높은 선생님들의 연주를 보며 많이 배웠다”며 “매년 부족한 점을 확인하고 보완하면서 스스로 조금씩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무대에 대해서는 “공연으로 만나는 무대와 대회 무대는 다르다”고 했다. 평소 명창, 문화재 선생들과 공연을 많이 해왔지만 대회는 또 다른 긴장을 안겼다. 그는 “대회는 시험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긴장이 컸다”며 “머리가 하얘질 정도였지만, 무대에 올라서는 판소리의 분위기와 상황을 잘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했다”고 떠올렸다.


쌍치초 운동장에서 시작된 국악 인연

오 씨와 국악의 인연은 어린 시절 순창 쌍치에서 시작됐다. 쌍치초등학교 시절 방과후 특별활동처럼 풍물놀이를 접한 것이 출발이었다. 당시에는 사물놀이라기보다 학교 운동회나 행사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치던 풍물놀이에 가까웠다.

그는 “운동장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북과 장구를 치며 돌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었다”며 “처음에는 놀이처럼 시작했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깊이 들어가면서 ‘이게 나에게 잘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악을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해진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는 “5, 6학년 무렵 도교육청 대회에 나갔는데 1등을 했다”며 “그 일로 학교가 국악 지정학교가 되어 지원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경험은 어린 오 씨에게 국악이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는 “내가 단순히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것이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가지 못한 예술중, 그래도 꺾이지 않은 마음

어린 시절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선생님은 전주 예술중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만류로 진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이 길이 쉽지 않으니 취미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부모님 마음도 이해됐다”고 말했다. 전문 예술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국악을 놓지는 않았다. 그는 “전문적으로 하지 못하더라도 취미로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연습을 이어갔다”고 했다.

전환점은 중학교 3학년 무렵 찾아왔다. 전주에 있는 강사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러 다니며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를 알게 됐고, 2003년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한국음악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국악의 길에 들어섰다.


고법의 매력, 소리꾼과 나누는 ‘음악적 대화’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에서 전통 타악을 배우던 그는 판소리 장단인 고법에 마음을 두게 됐다. 여러 국악 분야 가운데 고법이 그를 붙잡은 이유는 소리꾼과 장단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호흡이었다.

오 씨는 고법의 매력을 “음악적인 대화”라고 표현했다.

“판소리와 장단을 맞추다 보면 소리꾼과 보이지 않게 밀고 당기는 과정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음악적으로 대화한다고 표현하는데, 그 점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성취감을 많이 느꼈고,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판소리 무대에서 고수는 소리꾼을 받쳐주는 자리다. 하지만 받쳐준다는 말이 곧 뒤에 선다는 뜻은 아니다. 오 씨는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다”며 “그만큼 고수가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리를 아무리 잘해도 북소리 하나로 소리를 살릴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며 “제가 북으로 반주를 잘해줘야 소리꾼도 편하게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리를 앞서지 말라” 스승의 가르침

오 씨의 예술관에는 스승 조용안 선생의 가르침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고법 보유자인 조용안 선생에게 사사하며 고법의 길을 걸어왔다.

스승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기교보다 사람됨이었다. 오 씨는 “스승님께서는 실기보다 먼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며 “예의범절을 잘 지켜야 음악도 할 수 있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가르침은 “소리를 앞서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스승님께서 소리를 하셨던 분이어서 고수는 소리를 앞서가면 안 된다고 하셨다”며 “고수가 소리를 앞서가면 무대를 망치는 것이고, 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고수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가르침은 지금도 오 씨가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잡는 기준이다. 북을 치되 소리보다 앞서지 않고, 장단을 이끌되 소리꾼을 돋보이게 하는 것. 그의 고법은 그 균형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관객에게서 받는 위로, 후배에게 전하는 예의

전주시립국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그가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관객과 만날 때다. 특히 어르신들이 모인 시설이나 장애인이 있는 학교 등으로 공연을 갔을 때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희도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관객에게 전하는 기쁨이 다시 연주자에게 돌아오는 순간이다.

후학 양성에도 같은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오 씨는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저 또한 선생님께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예의범절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지난해 8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제9호 판소리장단, 고법 이수자 시험에 통과했다. 전북에서는 첫 고법 이수자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고수로서 무대에 서는 일뿐 아니라, 고법의 맥을 잇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역할까지 그의 어깨에 놓여 있다.


“순창에도 국악 자산을 지키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오 씨는 고향 순창에 대한 바람도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는 순창이 국악과 풍류의 고장으로 더 알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순창에서도 명창 선생님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분들의 흔적이나 이야기가 충분히 보존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아쉽습니다. 지자체에서 먼저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고창의 사례를 들며 국악 자산을 보존하고 콘텐츠화하는 일이 지역 문화와 관광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가 먼저 관심을 가지고 행사와 보존 활동을 이어가면 군민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문화 콘텐츠와 관광 자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육청의 역할도 강조했다. 오 씨는 “예전에는 학교에서 국악 동아리나 대회 참여가 활발했지만, 요즘은 전통음악 교육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AI 같은 새로운 분야도 중요하지만 전통음악은 우리의 뿌리”라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순창에도 국악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곳에서 먼저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상 이후에도, 다시 공부하고 다시 연습하는 길

대통령상 수상 이후의 목표에 대해 오 씨는 담담했다. 큰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갑자기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큰 상을 받았다고 해서 제게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제가 하던 일, 제가 하는 음악을 열심히 하고 공부와 연습도 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연습은 곧 공부다. 무대에 오르고, 소리꾼과 호흡하고, 후배를 가르치는 모든 과정이 여전히 배움의 연속이다. 그는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대학원 논문도 마무리하고 싶다는 계획을 전했다.


“전통음악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오 씨는 순창 군민과 독자들에게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전통음악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순창에서도 국악과 풍류를 접할 수 있는 계기와 무대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공연들이 많아져야 군민들도 더 많이 듣고 즐길 수 있습니다. 순창 군민들께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전통음악이 다시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오흥민 고수의 대통령상 수상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순창 출신 예술인이 전통음악 분야에서 꾸준히 쌓아온 노력의 결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국악 인생은 쌍치초등학교 풍물놀이에서 시작돼 전문 예술 교육, 스승의 가르침, 전주시립국악단 활동, 후학 양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고수는 소리를 앞서지 않고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오 씨의 예술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북소리 하나로 소리를 살리고, 소리꾼의 호흡을 받치며, 무대의 결을 만들어가는 일. 그가 걸어온 길은 묵묵히 뒤를 받치는 자리에서도 얼마나 깊은 예술이 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쌍치초 운동장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풍물놀이를 즐기던 소년은 이제 대한민국 고수의 최고 권위에 올랐다. 그러나 오흥민 고수의 북소리는 수상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소리를 앞서지 않고, 소리를 살리는 고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북소리는 순창의 국악 자산이 더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과도 맞닿아 있다. 지자체와 교육청, 학교, 군민이 함께 전통음악에 관심을 가진다면 순창은 국악과 풍류의 고장으로서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윤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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