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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휘문(계칠) 시인 |
| ⓒ 순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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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만 말을 주고 글자를 만들어 쓰게 한 특권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탄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글과 말을 주시지 않았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글자가 있었기에 옛 성인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글을 통해 내 생각을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으니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된 일이다. 글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그 생명체는 과거의 글을 살아 꿈틀거리게 해서 우리의 심장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심장 속으로 들어온 그 글은 다시 미래로 뻗어나간다. 어찌보면 글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60년생으로 6.25전쟁 이후 세대다. 어렵고 힘든 시대에 태어나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수많은 아픔을 겪으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견디기 힘든 가난을 이겨내 가며 풍운의 꿈을 안고 살아왔다. 단 한 번도 허투루 시간을 보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자수성가를 했다. 그러다가 공허함이 밀려오면 지혜와 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젊은 시절에는 근면과 성실로 무장하여 밤을 낮 삼아 생활했다. 결혼 후에는 가정을 건강하게 꾸려가기 위해 충실했다. 그 결과 40대에 경제적인 기반을 닦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작으나마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다. 봉사단체, 농민단체, 통일단체와 지역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큰 봉사를 하겠다던 그 꿈은 정치적, 사회적 견제에 부딪혔다. 결국 15년간의 아픔과 건강상의 이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자연인 조휘문으로 돌아오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넘고 넘었다. 그 시련 속에서 종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유불선 그리고 이슬람까지 교리와 진리를 탐독하며 참다운 인생관을 찾아나섰다. 종교를 통해서 바른 자아와 가치관을 확립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높여 가기 위해 27세에 결혼을 했다. 1남 1녀를 낳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오롯이 먹고살기 위해 살다보니 문학이란 단어조차 잊고 살았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애써 문학을 외면했다. 먹고살기 위해 달려야 했던 하루를 문학에게 발목이 잡혀 걸음을 늦추면 안 될 것 같았다. 곁이라도 내주면 수많은 감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진 40대 초반에야 조금씩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종교 서적을 접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해소해 보려 노력했지만 그것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쉰셋의 나이가 되면서 세상을 떠날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허덕이며 살아온 세월을 반추하니 한 많은 사연들을 가슴에 그냥 묻고 떠나기엔 너무 애석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했다. 언젠가 이 세상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너무 나이가 들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기력이 다해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소중한 가족들과 형제들에게 그동안 내가 겪어온 삶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깨달은 지혜와 마음에 간직한 진리와 철학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이 청춘인지라 좀 더 있다가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만의 공간에서 어떤 아픔을 이겨내며 살아왔는지, 자존감 하나로 늘 용감무쌍한 척 티 내지 않고 마음의 눈물을 흘렸던 지난날의 아리고 쓰라린 기억들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자서전을 통해서 가족과 형제와 세상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과 영감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 마음으로 자료들을 꾸준하게 만들어 오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베르자르당과 이서영 작가와의 인연으로 문화예술 문학사를 공부하다가 시낭송을 시작으로 시를 알게 되었다. 시와 수필에 도전하고 싶어서 밤을 낮 삼아 독서를 통해 습작을 하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걸으면서도 문학의 길을 걷고 싶었다. 문학이 들려주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귀기울이며 나아가고 싶었다. 문학은 나의 외로움을 대신해서 울어주며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 위로를 받으며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기 시작했다.
전북 문학관에서 "열린시 문학회" 이재숙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순창의 "싱그런 문학회 박덕은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의 지도를 받으며 시와 수필을 공부하는데 내 마음에 파문이 일어났다.
밑천 없이 시작한 문학의 길이 순탄할까, 고민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군대를 제대한 후 1986년도에 어머니가 마련한 100만 원의 밑천으로 시작한 한 많은 세월이었다. 그 시절만큼이나 시문학의 길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문학에 문외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글을 쓰고 싶다는 용기 하나만 있다. 어떤 날은 시와 수필을 써내려가다 가도 창피하고 부끄럽고 주눅이 들어 문학의 길을 그만둘까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업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책을 가까이 한 탓에 이슬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글도 쓰면서 흉내를 냈던 게 조금은 약이 되었나 보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아픔을 쏟아내고 싶다. 터져 나오지 못한 슬픔이 더이상 웅크려들지 않도록 풀어내고 싶다. 이제는 울음으로 번지는 노을이 아닌 그리움으로 물드는 노을을 보고 싶다. 내가 깨달은 진리와 철학 그리고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진솔하게 풀어낸 시집과 수필집과 자서전을 통해 나의 내면을 고백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고 성격과 재주나 능력, 타고난 복이 천차만별이듯 나는 남과 바꿀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인고의 삶을 건너온 자신를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는 살아왔다. 아직 내 글이 문학적이지 못하고 어설프다는 걸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더 열심히 독서로 다져갈 것이다. 60여 년의 한 많은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그동안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상념들을 진솔하게 글 마당에 풀어놓고 싶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아침 시문학의 길로 접어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축복으로 생각한다. 내가 겪어온 수많은 사연과 아름다운 추억과 삶의 지혜와 마음에 간직한 진리와 철학을 가족들과 지인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이런 아름답고 따끈따끈한 추억이 먼 훗날 희미한 기억 속에 파묻혀버렸을 텐데 지금이라도 마음 한켠에서 꺼내어 세상의 녹을 닦을 수 있어 참 행복하다. 문학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절망은 희망의 길잡이였고 슬픔은 기쁨의 주춧돌이었다. 문학을 하면서 달리던 걸음을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늦추니 다가올 인연들이 기다려진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조휘문(계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