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물포커스 출향인

내가 태어난 곳은 빗바우

순창신문 기자 입력 2023.02.08 13:34 수정 2023.02.08 01:34

ⓒ 순창신문

내가 태어난 곳의 행정구역은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쌍암리 142이다. 사실 이런 행정구역 이름은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름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몇몇 면서기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확한 내력을 알고 지은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 한자어로 붙여진 이름이 많다. 그렇게 대표적으로 잘못된 것이 ‘지푸실’을 ‘심초’라고 하고 ‘닥사리’를 ’유사‘라고 한 것이다.

우리 동네 이름은 ’빗바우‘이다. ‘볓바우’인지 ‘빛바우’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당시 어른들은 ‘바위’를 ‘바우’, ‘돌(石)’을 ‘독’으로 불렀다. 할머니께 어떤 이름이 맞느냐고 질문했더니, “바우와 바위, 돌과 독, 둘 다 맞다”고 했다. 커서 보니, 할머니는 한글을 잘 모르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동네 이름을 ‘양암(陽岩)’이라고도 하는 데, 빗바우를 ‘빛바우’인줄 알고 일제시대에 빛양(陽)과 바우암(岩)을 써서 ‘양암(陽岩)’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였다. 아버지는 빛바우를 그냥 빛나는 바위로 알고, 양암(陽岩)이라고 쓴 것 같다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 동네 밑에 쌍암(雙岩)도 바우가 두 개가 있어서 쌍암이 아니라 이마박같이 바위가 넓적한 큰 바위를 맛바우라고 불렀는데 이를 잘못 알고 쌍암(雙岩)이라고 했다고 알려 주셨다. 그 밑에 용바우는 용암(龍岩)이라고 하는 데 진짜 용 닮은 바위가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동네에 ‘빛나는 바위’는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옛날 사람들은 빛나는 바위같이 추상적인 동네이름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동네에 ‘빛(볓)’과 같이 생긴 형태의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는 내가 어렸을 때 올라가서 즐겁게 놀았던 요람 같은 곳이고, 읍내 학교에서 돌아오는 형을 기다렸던 상징이 된 그리운 바위다. 새마을운동 때 길을 닦느라 많은 바위가 깨부셔 없어질 때도 견뎌냈지만 나중에 동네 앞을 지나 안시내(安井)까지 길을 내면서 깨서 없앴는지 파묻어 버렸는지 없어져 버렸다. 그 바위가 빛(볓)을 닮아 ‘빛바우’로 불렸다. 빛(볓)은 농기구 쟁기 부품 중 하나다. 쟁기는 소로 논이나 밭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다. 땅을 갈아엎는 데 사용하는 쟁기 끝에는 쇠로 된 보습을 붙였다. 삼각형의 긴 보습은 땅을 깊게 파는 데 사용되며, 빛(볓)은 바로 그 보습 위에 붙어 있다. 보습이 흙을 파면 한쪽으로 흙을 몰아가게 해야 쟁기질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계속 따라 걸어갈 수 있다. 이처럼 한쪽으로 흙이 올라가서 옆에 세워지게 하는 부품을 빛(볓)이라 불렀다. 우리 동네에 이 빛을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우리 동네를 ‘볓(빛)바우’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셨다. 동네 지명에 대한 유래는 동네 사람들에게 대대로 구전되어 왔다. ‘빛나는 바위’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바위 이름은 모양이나 형태로 이름을 붙이지 추상적인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소리 나는 대로 한자 이름을 붙이면서, 유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붙인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한자 사대주의자들이 볓바우를 전혀 다른 의미의 빛바우로 착각하고, 한자 이름(陽岩)으로 작명해 형이상학적으로 설명을 하려다 보니 빛나는 바위가 있었다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정확한 의미의 한자를 알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둔 무리수들이 우리말 어원 오류의 시작점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음식의 이름도 이런 패턴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 우리말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알량한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왜곡된 지명과 음식 언어들이 난무하게 됐다.

우리의 지명이나 말은 리 조상들이 비록 한자도 모를 뿐만아니라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를지라도 부른 이름이 진실을 안고 있다. 알량한 한자를 몇 자라도 아는 것이 양반행세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시절에 사람들이 지리적 역사나 문화를 모르고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한자어의 지명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어를 해석하는 것으로 우리 동네의 역사나 문화를 아는 것으로 해설하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잘못하면 순창군의 진정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고 순창의 미래를 좀 먹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권대영 / 호서대교수


저작권자 순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